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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어르신을 이해하고 나를 다지는 계기가 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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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을 이해하고 나를 다지는 계기가 됐죠”

김다빈 기자 kdb15@ysnews.co.kr 입력 2016/01/05 10:13 수정 2016.01.05 10:07
미술심리치료사, 평생학습 마을학교 신정란 강사

노년기 우울증ㆍ치매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호응’




아프지 않고 잠을 자면서 편안하게 떠나는 것이 소원인 어르신들이 평생학습 마을학교를 통해 활기를 찾았다. 열 평 남짓한 방안에 홀로 하루를 보내던 그들이 방에서 나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

평생학습 마을학교는 양산평생교육원에서 65세 이상 어르신이 정신ㆍ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평생학습 프로그램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각 마을에 있는 경로당ㆍ마을회관 대표자 신청을 받아 진행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어르신이 반가워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화투를 치거나 텔레비전 시청이 더 하고 싶으셨던 것. 하지만 신정란(44) 씨와 12명의 강사가 머리 모아 어르신과 함께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가족처럼 친근하게 다가간 덕분에 하나둘 경로당과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16회 중 1~3회가 제일 과도기였어요. 처음에는 시위 비슷하게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 같이 장을 보러 가시기도 했죠. 한 두 분이 앉아 계셔 수업을 이끌고 갔더니 후기를 말하고 다른 분도 데려왔어요. 어르신들은 자신의 부족함이 들킬까봐 걱정해 표현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몇 번 해보시더니 자신감을 찾아 수업을 기다리시더라고요” 


미술심리치료 자격증 얻어 ‘소통’


프로그램은 신 강사가 직접 노년기 우울증ㆍ치매 예방을 위한 미술치료활동, 놀이활동, 건강체조, 스토리텔링, 동화구연, 사회교육활동 등으로 구성했다. 그는 2013년 미술심리치료자격증을 취득해 이후 꾸준히 그와 관련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올해부터 마을학교 수업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이번 하반기 수업 만해도 모두 30개 마을에서 550여명이 참여했고, 신 강사는 그 중 네 마을을 찾아 어르신 150여명과 만났다.

“처음에는 친정엄마나 가족과의 갈등이나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에 대한 궁금증으로 미술심리치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죠.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히 나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미술치료사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누군가와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컸던 거죠”

신 강사가 가족과 소통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던 것처럼 어르신들도 마을학교 수업에서 배운 것으로 손자, 손녀, 자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휴대전화로 간단한 문자나 사진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고, 수업에서 나온 결과물을 가족에게 자랑하면서 소통을 시작했다. 게다가 한 마을에 오래 함께 살았지만 몰랐던 서로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수업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70~80대 어르신들이에요. 보릿고개를 넘기며 힘든 시절을 살았던 어르신들이고 일제강점부터 다양한 역사를 지나온 분들로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산 역사’죠. 그만큼 연세가 많으셔 손 떨림, 허리 아픔 등의 이유로 수업에 참여하기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어요. 젊은 사람도 2시간을 앉아있기 힘든데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참여했죠. 나이가 가장 많았던 93세 어르신은 잠깐 일어나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시작하기도 했어요”


서로 건네는 위로가 큰 힘


신 강사는 수업을 통해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도왔다. 버선을 꾸미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떠올리고, 고생한 손을 그리며 힘들었던 자신들 인생을 위로하기도 했다. 


“자기 손을 본 떠 보며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우는 분도 있었어요. 살고 싶은 집을 잡지에서 오려붙여 만들 때 비싼 가구 근사한 차가 있는 잡지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귀퉁이에 있는 것이라도 사람을 오려 넣었죠. 어르신들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어르신들은 마지막 수업에서 저승사자의 뭐하다 왔냐는 질문에 ‘나 미술공부 하다가 왔소’라고 할 말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먼저 간 사람 불쌍타. 이런 것도 못 해보고…’라며 안타까워했다.

“어르신을 다 이해하고 나를 다지는 계기가 됐어요. ‘늙음’을 이해하게 됐죠. 버럭 화를 내는 어르신을 보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르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졌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리가 불편한 분을 직접 찾아가 수업하고 싶어요. 또 학용품을 하나씩 드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어요. 이제 제가 안가면 어르신 삶이 무료해질 거 같아 걱정이에요.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길 가슴이 저려 왈칵 눈물이 쏟아졌죠”

올해 수업을 끝낸 신 강사는 ‘늙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년에도 어르신들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예정이다. 그는 누군가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어르신을 생각하며 더 좋은 수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 미술심리치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인 친정엄마도 다음 수업에 꼭 한 ­번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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