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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산은 내게 나를 위한 삶과 ‘희망’을 선물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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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내게 나를 위한 삶과 ‘희망’을 선물해줬다”

김다빈 기자 kdb15@ysnews.co.kr 입력 2016/08/30 10:12 수정 2016.08.30 10:12
클라이밍센터 지도자로 제2의 인생 연 최은희 씨

종합운동장 암벽장 최은희 강사
2008년 양산등산학교 2기 졸업
평범한 주부에서 지도자로 성장















ⓒ 양산시민신문




“2013년부터 꿈꿨던 알프스 원정 꿈을 이뤘다. 팀을 꾸려 한 달에 10만원씩 모았고 숱한 산을 오르며 준비했지만 주부인 ‘내가 할 수 있을까?’, ‘될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알프스로 떠나기 전 물금역 기차 안에서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렸다.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산은 내게 한마디로 ‘희망’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줬다”


2008년 양산등산학교(학감 이상배) 2기를 졸업하고, 최근 알프스까지 다녀온 최은희 씨(49)를 만났다. 최 씨는 현재 종합운동장 실내암벽장(클라이밍센터)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원래 운동신경이 좋고 산을 무척 잘 탔던 것도 아니었다. 양산등산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초등학생 아들, 딸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을 뿐이었다. 평소 하는 운동도 아픈 허리 치료 차원에서 시작한 수영뿐이었고, 부산 살 때는 집 뒤에 장산이 있어도 산책만 다녀왔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그녀는 가정을 돌보느라 뭔가에 도전하고 꿈꾸는 삶을 잊은 지 오래였다.


“사실 입원할 정도로 허리가 안 좋았어요. 허리디스크와 협착증을 앓고 있었죠. 운동을 안 하면 더 아픈 것 같아 부산에서 수영을 시작했어요. 부산에 살 때 같이 수영도 하고 이야기 나누던 엄마들과 떨어져 쓸쓸함을 많이 느꼈어요. 양산에 온 뒤 1년은 매일 부산에 다녀왔죠”


최 씨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양산에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양산등산학교 모집 공고문을 발견했다. 당시 그녀는 등산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지만 무료에다 양산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에 바로 신청했다고 한다.




“등산학교에 간 것은 제 인생에서 정말 잘한 일이에요. 등산학교를 통해 ‘산’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고 친구와 진정한 제 삶을 찾았기 때문이죠. 특히 산을 만나 나 자신을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 자아, 내 꿈이자 희망을 찾은 것이죠. 그때부터 나 자신을 중요시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양산등산학교가 저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갔죠”


처음부터 최 씨는 지도자가 될 만큼 산을 잘 탄 것은 아니었다. 등산학교에서 암벽을 탈 때 자신의 힘으로 못 올라가서 강사들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암벽등반을 할 때는 학생을 묶은 줄(자일)을 강사가 위에서 당겨주며 올라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때 최 씨가 당겨 달라 말을 많이 해서 이상배 학감이 ‘땡기소’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할 정도였단다.


“사람들이 저를 그때부터 ‘땡여사’ 혹은 ‘땡이’라 불러요. 그 정도로 처음에 못했지만 산을 오른 뒤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백운슬랩을 갔을 때가 하이라이트였죠. 그곳을 기어 올라가서 본 풍경이 제 가슴을 설레게 했고 그를 계기로 등산 장비를 샀어요. 장비도 갖추고 높은 산이 주는 전율을 즐기며 등산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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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는 이후 이 학감과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산을 누비고 다녔다. 한 번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아 머리가 깨지는 위험한 상황에 부딪치기도 했다. 머리를 꿰맬 정도였지만 당시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꿈을 키워가야 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다시는 산에 안 보내 줄까 봐 일어서다가 돌에 머리를 박아서 난 사고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을 하고 나서 3년 뒤 남편도 저와 함께 등산을 시작했고, 등산하는 사람들과 알게 되면서 거짓말이 들통났죠. 이제 산을 탈 때 ‘안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며 즐기고 있어요. 등산의 세계를 경험한 남편은 이제 그런 저를 믿고 응원해주는 든든한 후원자죠”


등산학교에서 최 씨가 경험한 산은 고통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 뒤에 오는 몇 배의 기쁨을 알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산이 주는 기쁨이 너무 좋았던 그녀는 부산에 있는 클라이밍센터를 찾아 실내 암벽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밖에도 그녀는 암벽을 함께 배우던 사람 추천으로 밀양 등 겨울 빙벽을 경험해보기도 했고, 지역에서 열리는 볼더링(암벽타기를 위한 몸풀기 등반) 대회에 참가하며 경험과 전문성을 키워갔다. 게다가 틈틈이 공부하면서 산을 통해 자신을 찾게 도운 등산학교 교무로 6년 동안 학생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등산학교에서 이 학감님이 ‘산악인의 삶’이라는 주제로 수업하시면서 ‘내가 배웠으면 남을 가르쳐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하셨어요. 학감님 말처럼 등산학교에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산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도와주면서 오히려 제가 남을 배려하는 방법과 인내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런 시간 속에서 이 학감님처럼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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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 씨는 오리엔테어링(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지정된 지점을 통과하고 목적지까지 완주하는 경기) 3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종합운동장 실내암벽장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최 씨가 교육한 학생이 클라이밍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오는 등 결실을 보며 그녀는 계속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저에게 산악인이라는 말은 아직 어울리지 않아요. 갈 길이 멀죠.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저를 완성하기 위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어요. 센터에 오는 사람들과 함께 등반하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죠. 항상 목표가 있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산에서 제 새로운 인생과 인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배웠어요. 산은 ‘헌신’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 학감님처럼 후배들에게 헌신하는 지도자가 되는 꿈을 따라 저는 또 산을 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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