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혼자 산비탈에서 팥밭을 일구며 살아갔죠.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할머니를 위협하는데…” ⓒ
어르신 9명이 2개월 동안 동화구연을 공부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아기돼지 삼형제’부터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까지 다양한 동화를 직접 외워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옛날이야기를 전하는 어르신들은 양산시노인복지관(관장 김정자) ‘이바구할머니 봉사단’이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방언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할머니 봉사단을 뜻한다. 어르신들은 지난해 9월부터 삼성어린이집, 금잔디어린이집 등 5곳을 방문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다. ⓒ
봉사단 반장 고명지(69) 어르신은 아동복지보육과를 졸업해 현재 양산여성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고 어르신은 아이를 좋아해 일을 시작했고, 더 재미있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동화구연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손자 둘을 앉혀놓고 미리 연습도 해봤어요. 연습 끝에 완성한 구연을 보여주면 ‘할머니 가지 마세요’하며 어찌나 붙잡는지 저도 아쉬워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죠”
동화구연 봉사는 우리를 위한 것
박광자(71) 어르신도 아동복지보육 상담에 관한 교육을 받는 등 전문적으로 공부해오다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봉사단에 들어오게 됐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 아동복지보육 상담을 공부했어요. 처음 아이들을 만나러 간 곳은 작고 아담한 어린이집이었어요.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아이들이 어찌나 예쁜지…. 집에 돌아가서 계속 생각이 날 정도였죠”
마찬가지로 김임성(70) 어르신은 부산에 살며 배운 동화구연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부산에서 동화구연을 배웠고, 봉사도 다녔어요. 그러다 2010년 양산에 이사 와 이곳에서도 봉사할 수 있어 감사하죠”
봉사하는 일에 몸담은 지 10년이 넘은 김영지(72) 어르신은 모집 소식에 고민 없이 신청하게 됐다고 한다.
“봉사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 저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어요. 나이 들고 체력이 약해지면서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졌죠. 그런 제가 어린 새싹들을 만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났죠”
김정옥(70) 어르신도 10여년을 지역 봉사에 일꾼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이런 기회를 만나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저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가죠. 제가 만나고 있는 27명의 어린이가 동화 속 세상에서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아이들을 위한 봉사가 사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김필현(69) 어르신은 젊은 시절 놓쳤던 자녀와의 시간을 새로 찾은 기분이라며 더없이 좋아했다.
“젊은 날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많이 놓쳤어요. 이렇게 봉사활동을 다니며 아이들을 만나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어 감사해요”ⓒ
반면 젊은 시절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던 황광자(73) 어르신은 그때 좋았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봉사하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 성장해 떠난 자리를 채울 어떤 것도 찾지 못했는데 봉사하면 그 자리가 채워지는 것을 느꼈죠. 바르고 예쁘게 자라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해요”
정경옥(65), 김경림(68) 어르신도 아이들에게 동화구연을 전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모든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했다. 웃는 모습, 찡그린 모습, 우는 모습까지 좋다고. 그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바랐다. 또 정서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은 지역을 찾아가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아픈 아이들 마음을 감싸줄 이바구할머니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아이에게 전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