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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삼성동 어느 통장의 하루, “몸이 열개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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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어느 통장의 하루, “몸이 열개였으면 좋겠네요”

김다빈 기자 kdb15@ysnews.co.kr 입력 2016/06/21 10:08 수정 2016.06.21 10:08
우리동네 팔방미인 이종여 통장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교통ㆍ금연지도 등 쉬지 않고 봉사
제2의 고향 삼성동은 ‘감사의 공간’… 퇴직 후 봉사 시작
















ⓒ 양산시민신문




삼성동 대동빌라트 이종여(68) 통장의 하루는 여느 회사원보다 더 바쁘게 지나간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7시 50분에 삼성초등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교통지도를 하며 등교하는 학생들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학교로 향한다.

















↑↑ 교통지도 활동
ⓒ 양산시민신문



“학교 입구 사거리에는 신호등이 없고, 시내버스 7개 노선이 지나는 길목이라 매우 위험합니다. 어머니회가 건널목에서 깃발로 제어하지만 차량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죠. 삼성동바르게살기협의회 조끼를 입고 모자를 써야 차량이 제어됩니다”


지난해 이 통장은 사거리에서 발생한 접촉사고를 두 번이나 보며 누군가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12월부터 손자 같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매일 아침 교통봉사를 해왔다.


“장차 마을을 이끌 아이들이 다치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이 저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이 통장은 아이들이 학교로 모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또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잠깐 쉴 시간도 없이 새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바쁘다. 그는 낫과 호미를 들고 북정동 뒷산 녹차둘레길로 향한다. 녹차둘레길은 북정고분군 일대에 조성한 녹차밭으로 그가 2013년 파종부터 함께 도와 애정을 많이 쏟은 공간이다.


“녹차 씨앗을 심을 때부터 함께해 녹차 새싹이 자라고 커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새싹 옆에 무성한 잡초를 보게 됐고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주민센터를 찾아가 관리를 직접 하겠다고 자원했죠”

















↑↑ 녹차둘레길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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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둘레길은 성락사부터 해강아파트까지 이어지는 2.4km 구간이다. 이 통장은 아침저녁으로 둘레길을 걸으며 잡초를 뽑아 녹차가 잘 자라게 돕고 있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2시쯤 끝난다. 점심때가 되면 내려갈까 하다가도 녹차들이 눈에 밟혀 간단한 요기를 하며 풀을 뽑는다고 한다.


“어린 녹차들이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산을 오릅니다. 삼성동에는 시립박물관 이외에 시민이 즐길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저는 녹차둘레길을 앞으로 잘 가꾸고 관리해 삼성동 명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와 주민들 즐거움이 보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통장은 녹차둘레길 정비를 마친 뒤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5시쯤 양산시금연지도원으로 변신한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일주일 동안 피시방과 식당 등에서 금연지도를 하고 있다. 가게를 모두 돌고 나면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 금연지도 활동하는 이종여 통장(사진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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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지도를 하다가 가끔 젊은 사람이 막말하거나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기분이 많이 상하지만 그 자체도 기성세대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 역할이 그런 사람을 바로 잡아 주는 거죠”


금연지도 활동이 없는 날에도 이 통장은 쉬지 않는다. 자율환경감시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삼성동 공장에서 악취가 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그는 양산시 환경 순찰팀과 함께 냄새 진원지를 찾으러 다닌다. 한때는 아이들이 구토할 정도로 냄새가 심각했는데 현재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이 통장이 삼성동을 위해 온종일 봉사하는 이유는 이곳이 그에게 제2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김해에서 태어난 그는 1979년 3월 20일 롯데제과에 입사하면서 삼성동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전쟁과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그였기에 안정과 평안함이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어준 삼성동은 감사의 공간이었다.

힘 닿는 한 신바람나게 봉사

“유난히도 가난했던 60년대, 국가의 명을 받고 베트남전에 갔습니다. 당시 수색작전을 하던 우리는 목숨을 빼앗아갈 총알보다 찌는 더위와 목마름이 더 힘들었습니다. 물 대신 오줌을 받아먹으며 전쟁을 견뎠죠.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과 가난을 지내왔기에 평안을 선물해준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제2의 고향 삼성동이 참 감사했습니다”


이 통장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삼성동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30년을 일한 롯데제과에서 정년퇴임 한 뒤부터 삼성동새마을회 지도자, 대동빌라트 입주민 대표, 한국자유총연맹 양산시지회 회원 등을 하며 지역을 위해 일했다. 현재는 삼성동 대동빌라트 통장과 삼성동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이곳저곳에서 지역을 위해 일하고 있다.


“저로 인해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외에 더 바라는 게 없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이 몸이라도 바쳐 뭔가 일하고 싶었죠.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되는 한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기 신바람으로 하는 봉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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