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회와 사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추진했다가 예산이 전액 삭감된 엄정행 음악길 조성사업을 양산시가 부서를 바꿔 은근슬쩍 재추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말썽을 빚고 있다.
지난해 양산시 문화관광과는 종합운동장 뒤편 양산천 둑길 900m 구간에 성악가 엄정행 씨 공적을 기
리는 조형물과 포토존, 이야기판 등을 비롯해 대표곡을 들을 수 있는 음향시설을 설치하는 엄정행 음악길 조성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을 추경에 편성해 의회 승인을 요청했지만 시의회는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당시 시의회는 위치 적정성 등 사업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살아 있는 사람의 일대기를 담은 기념사업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의회와 전혀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그러나 엄정행 음악길 조성사업은 문화관광과가 아닌 건설과에서 되살아났다. 건설과가 경남도민체전을 앞두고 신기~영대교 간 산책로 정비사업을 시행하면서 엄정행 음악길 표지석을 설치한 것. 앞서 양산시는 지난해 삽량문화축전 기간에 시의회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양산천 둑길을 엄정행 음악길로 선포했고, 시의회는 선포식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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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와 건설과를 대상으로 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엄정행 음악길에 대한 양산시의회 질타가 쏟아졌다.
기획행정위원회 이상걸 시의원(더민주, 동면ㆍ양주)은 “시의회와 협의가 안 됐고, 사업을 재고해보라는 뜻에서 예산을 전액 삭감했는데, 양산시가 마음대로 엄정행 음악길을 선포하더니 이제는 표지석까지 세웠다”며 “예산을 목적대로 집행하려면 예산 편성과 승인 시스템에 따라야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시의회가 필요 없다”며 문화관광과에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도시건설위원회 임정섭 시의원(더민주, 물금ㆍ원동ㆍ강서)도 건설과에 “신기~영대교 간 산책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엄정행 음악길 사업이 아니라고 해놓고, 사실상 엄정행 음악길 사업을 추진했다”며 “이는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정 도시건설위원장(새누리, 평산ㆍ덕계)과 정경효 시의원(새누리, 상북ㆍ하북) 역시 ‘시의회 경시’, ‘일방통행식 행정’, ‘소통 부족’, ‘회계질서 문란’ 등 표현을 쓰면서 건설과를 질타했다.
이에 대해 건설과는 엄정행 음악길 표지석은 설치했지만 산책로 정비사업일 뿐이며, 사업 취지가 완전히 다른 별개 사업이라고 해명했다.
박진욱 건설과장은 “신기~영대교 간 산책로 정비사업은 기존 포장을 걷어내 마사토로 바꾸고, 벚나무 등을 심는 것”이라며 “음향시설을 보강해 엄정행 관련 노래를 틀고, 관련 콘텐츠를 갖추는 문화관광과 엄정행 음악길 사업과는 사업 계획이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용기 문화관광과장은 “현재 엄정행 음악길 조성사업 관련 계획은 없다”며 “예산 삭감 이후 문화관광과에는 엄정행 음악길이라는 용어 차제가 없어져 더 이상 관련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을 삭감하자 꼼수를 부려 엄정행 음악길 사업을 재추진했다는 시의회와 엄정행 음악길 사업이 아니라는 양산시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엄정행 음악길 표지석이 세워진 양산천 둑길에는 산책로에 설치된 기존 스피커를 통해 엄정행 씨 대표곡이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