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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빈 기자 kdb15@ysnews.co.kr | ||
ⓒ 양산시민신문 |
1950년 6월 25일 새벽 누군가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북한 남침으로 일어난 6.25 전쟁.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범한 하루를 살던 젊은이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총을 집어 들고 나서야 했다. 어린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한창 친구들과 추억을 쌓아갈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국가를 지켰다.
지난 25일 문화예술회관에서 호국 영웅을 기리는 6.25 전쟁 66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조국을 구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희생한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모여 그날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기념식이 모두 끝나자 객석에 앉았던 6.25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 식이 끝나고 정리하는 데 10분이 걸린다면 이날 행사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길었다. 참전용사들이 지팡이에 의지해 자리를 옮기는데 시간이 꽤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사이에 섞여 아주 천천히 공연장을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참전용사가 그의 아내, 손자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버스에 사람이 많아 손잡이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한 젊은이는 서 있기 힘들어 보이는 어르신의 모습에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모르는 척했다. 만약 그분이 우리나라를 지킨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 젊은이는 그랬을까?
국가를 위해 젊은 시절을 바친 영웅들은 매월 3~5만원 정도 수당을 받으며 버스에서처럼 정부와 시민에게 외면받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참전용사들을 비롯해 오늘날 민주주의가 있게 한 어른, 선배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 살아있다. 어르신 복지 사업 담당자가 우리 젊은이에게는 현재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도운 어르신을 보살피고 예의를 갖출 의무가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66년이나 흐른 만큼 참전용사 중에는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도 많다. 전쟁에서 젊은 생을 바치고 돌아오는 예우가 이뿐이라면 어느 젊은이가 생을 바쳐 전쟁에 뛰어들겠는가?
버스에서 참전용사 가족이 내렸고, 젊은이는 그제야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