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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 ||
ⓒ 양산시민신문 |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처럼 나 역시 꿈이 있다. 돈이 없어도 몸이 아플 때 누구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돈이 없어도 배우고 싶다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다. 별 볼 일 없는 개인이 꾸는 꿈 치곤 거창하긴 하다.
내가 이런 꿈을 꾸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고, 배우고 싶으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 배려이자 권리기 때문이다.
특히 ‘배움’이라는 것은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틀 안에서 차별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최소한 도구다. 물론 최근에는 이마저 ‘자본’에 따라 점차 차별받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배움에는 귀천(貴賤)이 없고,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최근 교육부 2급 정책기획관이라는 사람이 국민을 ‘개, 돼지’에 비유하며 “신분제 사회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 변명대로 술에 취한 상태였는지 아니면 멀쩡한 정신으로 쏟아낸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개, 돼지’에 속하는 국민으로서 참담하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나향욱처럼 살기를 꿈꾼다. 상위 1%에 속해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이는 인간 본능에 충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늘 주위와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웃, 친구와 함께하는 법보다 그들을 이기는 법부터 가르치는 게 부모 욕심이다. 나 역시 그랬고, 나향욱 역시 그렇게 배워왔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교육 목적은 ‘경쟁’이 아니다. 아이들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 사회를 더 발전시키는 훌륭한 인재를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이들에게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을 안내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부모가 친구를 이기기 위한 경쟁을 가르칠 때 교육 당국은 공부 목적은 경쟁이 아님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발전시켜 스스로 꿈꾸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과정임을 깨닫게 도와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 고위 공직자 스스로 국민을 계급으로 나누고, 99% 절대다수 대중을 개, 돼지로 취급하니 과연 우리나라 교육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교육 목적이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패자는 ‘개, 돼지’로 낙인찍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도록 만들기 위함은 분명 아닐 텐데 말이다.
특히 공교육은 그 목적이 바르지 않을 때 암세포와 같다. 사회에 대한 불만 없이 그저 열심히 일만 하는 노동자, 부당한 지시에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찰과 군인, 알려주는 것 이외엔 어떤 상상도 하지 않는 학생, 열심히 돈 벌고 그 돈을 쓰는 데만 집중하는 대중,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공무원… 이들을 키우는 도구로 ‘교육’을 사용한다면 결국 이 사회 곳곳에서 암세포를 키워내는 것과 같다. 이렇게 전이 된 암세포는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점차 우리 공교육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혹시 소위 말하는 ‘잘난 사람’들이 교육이란 건 상위 1% 인간이 99% 개, 돼지를 ‘사육’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향욱 이외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고위 공무원이 교육부 내에 또다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나향욱 사건 이후 내 꿈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누구나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에 앞서,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개, 돼지가 아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