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에게 병역은 ‘의무’다. 남자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의무지만 누구나 가기 싫은 것 역시 군대다. 반대로 군대라는 곳이 가고 싶다고 해서 모두 갈 수 있는 곳은 또 아니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나름 선택받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남지방병무청은 지난 5월 경남지역 병역명문가 26개 가문을 선정해 인증패를 전달했다. 양산에서는 정광열(59) 씨 가문 등 3개 가문이 선정의 영광을 안았다.
정씨 집안은 3대에 걸쳐 모두 8명이 군대에 다녀왔다. 8명 모두 육ㆍ해ㆍ공군에서 현역으로 복무를 마쳤고, 군대생활 역시 모범적으로 한 공로를 인정받아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정 씨 가문은 돌아가신 아버님부터 병역 의무를 시작했다. 1대인 고(故) 정용이 씨는 대한민국 육군 하사관(부사관) 1기 출신이다.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아 6.25 전쟁에 참전했고, 5년간 복무했다고 한다.
2대인 정광열 씨는 현재 양산경찰서 청문감사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1978년부터 1981년까지 36개월간 해군에서 복무했다. 그의 형과 두 동생도 현역으로 병역의무를 마쳤다. 형 정재열(65) 씨는 육군, 본인과 동생 정찬열(56) 씨는 해군, 그리고 막내 정세열(50) 씨는 공군으로 전역했다.
3대에서는 모두 세 명이 군대에 다녀왔다. 정재열(65) 씨 아들 정경훈(35) 씨와 정광열 씨 아들 정재훈(30) 씨, 그리고 정찬열 씨 아들 정성훈(26) 씨가 모두 육군을 제대해 3대에 걸쳐 모두 8명이 성실히 복무를 마쳤다.
↑↑ 경남지방병무청이 병역명문가문으로 선정한 정광열(사진 오른쪽)씨와 그의 아들 정재훈(사진 왼쪽) 씨. |
ⓒ 양산시민신문 |
정광열 씨는 병역명문가 선정에 대해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갖는 것인데 이렇게 상을 받게 돼 쑥스럽다”며 “우리가 3대에 걸쳐 8명이 모두 현역으로 복무했고, 그 과정에서 아무런 말썽 없이 성실하게 복무한 걸 병무청에서 높게 평가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아들인 재훈 씨는 “처음 병역명문가로 선정됐을 때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를 갔다 와야 하고, 그게 왜 칭찬받을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연한 의무를 다했을 뿐인데 상을 받는 게 다소 의아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병역명문가로 선정돼 증서를 받고 보니 굉장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정광열 씨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부모는 많은 걱정을 하게 마련이고 자식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분단국가로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는 현실인데, 군대에 다녀오면 국가관이 투철해지고 협동심과 애국심도 커지기 때문에 사회 적응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재훈 씨 역시 “사회생활 초석을 군대에서 배웠다”며 “처음으로 단체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만큼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군대가 기피대상이 아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정 씨 가문에는 이제 4대째 군 복무를 이어갈 예비(?) 군인이 있다. 재훈 씨 사촌 형인 정경훈 씨 아들 정시훈(4) 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시훈 군뿐만 아니라 재훈 씨와 그의 사촌 형제가 결혼해 아들을 낳게 된다면 그들 역시 병역명문가 전통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한편, 2004년부터 시작한 병역명문가 선정은 3대에 걸쳐 군 복무를 모두 현역으로 성실히 마친 가문을 대상으로 하며 경남지역에서는 올해 26개 가문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