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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 ||
ⓒ 양산시민신문 |
사실 썩 내키지 않았다. 동네 기자도 기자인지라 본의 아니게 자연스럽게 ‘갑’ 위치에 서게 되는 상황이 많았고, 기억을 되살려 보건대 그런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밥값이나 술값을 계산해본 적이 없다.
2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라 나이 지긋한 취재원들 사이에서 ‘갑’이라는 위치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밥 한 끼, 술 한 잔이라고 하지만 왠지 모르게 빚지는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기고 40을 바라보는 12년차 기자가 된 지금도 ‘접대’라는 말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청탁금지법을 28일부터 시행된다. 청탁금지법은 적용 대상이 광범위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관행’이라는 말로 포장해온 일하는 방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야 할 만큼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천지가 개벽해야 하는데, 청탁금지법을 바로 그 출발점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소위 ‘힘’ 없고 ‘백’ 없는 많은 국민은 청탁금지법을 계기로, 돈이나 부정청탁으로 무엇인가를 해결해보려는 관행이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규정으로 청탁금지법에 대해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온다. 취지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수많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고, 사례마다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적발돼 법정에 가더라도 실제 사례에 따라 유ㆍ무죄가 달리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왜 우려하는지 이해가 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만든 208쪽짜리 해설집과 174가지 사례를 담은 207쪽짜리 사례집을 들여다보면 명쾌하기는커녕 더욱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실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발생할 실제 사례에 어떻게 적용될지 의문만 커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방식이 더욱 교묘해지고, 지하경제가 더 활개 칠 것이라는 지적에도, 힘 있는 사람은 여전히 구멍을 통해 빠져나갈 것이라는 냉소에도, 법망을 교묘히 피해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에도 청탁금지법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다. 시행 과정에서 판례가 쌓이고 제도적 보완이 뒤따른다면, 법을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안다면 말이다.
국민권익위가 장황한 해설집과 사례집을 내놓았지만 청탁금지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밥이든 술이든 내 돈 내고 내가 먹고, 자신이 맡은 업무는 공정하게 처리하자’는 것 아닌가. 억울하다면 의심받을 짓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