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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어평(메기들의 한자명)은 동면 가산리 앞에서 남부동, 교동, 물금읍 가촌리 앞까지 이어진 넓은 들판을 부르는 옛말로, 지형이 낮은 습지라 일제강점기 양산천 제방이 축조되기 전까지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었다.
조선 말기 이런 척박한 곳에 과도한 과세가 이뤄지자 농민이 반발하며 한양으로 상경해 장계를 올리는 등 부당함을 알렸다. 이에 당시 홍위영 대장 정원용이 사정을 조사한 후 경상도 관찰사 서헌순과 양산군수 심락정에게 타어평 농민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농민들은 이후 세 사람의 공덕을 기리고자 불망비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