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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 ||
ⓒ 양산시민신문 |
생각보다 문제는 심각했다. 적어도 ‘핏줄’인 내가 보기엔 그랬다. 조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더 정확히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몰랐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 대학은 포기했고, 대학을 포기하니 취업 말고 달리 선택할 게 없었을 뿐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공부하며 무언가를 수없이 배워왔는데도 막상 진학을 빼고 나니 선택할 게 없었다. 조카는 “그냥 생산직도 좋으니 아무 일이나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답답했다. ‘나는 안 그랬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한 내가 ‘꼰대’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카가 그동안 앞날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많이 답답했다. 길을 찾아보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이야기를 거듭하다 보니 그나마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일을 찾았다. 바로 네일아트였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생산직’으로 돌아왔다. 삼촌 입장에서 내 조카가 좀 더 편하게, 돈도 많이 버는 일을 하길 바라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능동적이고 발전적인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물론 생산직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그 일(또는 일로 벌게 된 돈)을 바탕으로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는 지가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나 자신이 그렇게 잘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조카는 막연하게 걱정했고, 이유 없이 기대했다. 취업을 걱정하면서도 막상 방법을 찾거나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조카는 몰랐던 것 같다. 12년 동안 국영수는 배웠지만 누구도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법을, 길을 찾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자신에게 있겠지만, 모든 책임을 오롯이 조카에게 전가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답은 없겠지만 미리 귀띔하거나 조언 정도는 해줬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자 인생 선배인 내 책임도 크다.
스무살. 이제 성인이란 이름으로 자기 인생을 본격적으로 책임지며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이다. 하지만 대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한 아이들에겐 정말 그 길을 찾기 어려운 때다. 아마도 대한민국에는 그런 ‘조카’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미 ‘꼰대’가 된 나지만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진학도 좋고 취업도 좋다. 하지만 그 둘 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도 알려주고 싶다.
스스로 많이 고민하고, 고민한 만큼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일과 직업이 있다.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다. 그나마 스무 살이면 그런 실패조차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일지 모른다. 어차피 누구도 알 수 없는 앞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