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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태극기와 촛불,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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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촛불, 그리고 민주주의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7/03/07 20:41 수정 2017.03.12 20:41













 
↑↑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 양산시민신문 
건곤감리청홍백(乾坤坎離靑紅白).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성을 의미한다. 가운데 태극 문양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파란색은 음(陰), 붉은색은 양(陽)이다. 우주 만물이 음양이라는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다. 

음양의 태극 문양 주변 네 모서리에는 하늘(건, 乾)과 땅(곤, 坤) 그리고 물(감, 坎)과 불(이, 離)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4괘(卦) 역시 음양(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로 우주의 모든 기운을 담고 있는 ‘태극기’ 이야기다.

지난 1일 양산지역에도 태극기 물결이 일었다. 98년 전 이 땅 민초들이 목숨 걸고 조국 광복을 외친 ‘3.1 만세운동’을 기념하며 많은 시민이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들은 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 만세, 양산시 만세를 외쳤다. 그들의 외침에는 이웃의 안녕과 가정의 평화가 담겨 있었다. 그들 손에서 나부낀 태극기는 민족 자부심이자, 온 국민 화합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태극기는 화합과 조화의 상징이다. 조화는 균형이고, 균형은 우주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조화는 본래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너와 나의 차이, 각자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조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 태극기가 요즘 편을 가르는 도구가 되고 있다. 조화의 상징이 경계의 상징이 돼 버린 것이다. 

3.1절을 기념하기에 앞서 지난달 28일 양산에 또 다른 태극기 물결이 일었다. 야당 유력 대통령 후보 집 앞에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형 태극기를 펄럭이며 그들은 애국가를 제창하고 ‘탄핵 반대’, ‘탄핵 각하’를 외쳤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집회는 끝났다. 

이들 집회를 일각에서는 나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집회는 나쁠 게 없다. 표현 방식이나 언어가 거칠었다면 그걸 문제 삼아야지 집회 자체를 탓할 일이 아니다. 

다만 그들 손에 들린 태극기가 마치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처럼 치부되는 점은 매우 유감스런 부분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태극기는 결코 어느 일방의 뜻을 대표하는 표식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과 다른 뜻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3.1절인데 태극기를 게양하는 게 왠지 꺼려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현실은 무척 씁쓸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태극기에만 국한할 일이 아니다. 촛불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촛불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촛불 역시 어느 한 진영의 전유물일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 태극기와 촛불로 나눠 서로 삿대질하며 편을 가르고 있다. 그저 의견이 다를 뿐인데 이런 ‘다름’을 죄악으로 치부하고 서로 맹렬히 공격한다.


진보, 보수 모두 다른 의견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종북좌빨’이나 ‘수구꼴통’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다. 전체주의 사회의 다른 말은 곧 ‘독재국가’다. 

하늘 위 새는 좌우 두 날개로 힘차게 날아야 하듯,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여야 아름답다. 왼쪽에서 부는 바람이든, 오른쪽에서 부는 바람이든 하늘 높이 아름답게 그렇게 펄럭여야 한다. 종합운동장 태극기는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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