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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죠. 괜히 남편 꼬임에 넘어간 거죠. 피부는 까맣게 그을리고…. 시내에 잘 나가지 못하는 것도 불편해요. 무엇보다 수익이 문제죠. 그전에는 기술 하나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왔는데 농업으로는 그런 이익을 거둔다는 게 어렵네요. 뭐 남편이 이곳 생활을 워낙 좋아하니 별수 없이 지내는 겁니다”
윤의성(55)ㆍ이미란(54) 부부는 3년 차 귀농인이다. 부산에서 살다 9년 전부터 귀농을 준비해 지지난해부터 농사를 전업으로 하고 있다. 부부 모두 실내건축 일을 하다 남편 윤 씨 의견으로 귀농을 선택했다.
현재 1만여㎡ 규모 농장에서 블루베리와 복분자를 재배한다. 벌이는 사실 신통찮다. 실내건축 일을 할 때와 비교하면 아내 수익의 1/3도 채 안 된다. 대신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없으니 몸도 한결 가볍다.
“남편이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시골에 오고 나서는 아침에 일어날 때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해요. 부산에서 살 때만 해도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나는 일이 없었거든요. 자연의 기운 때문인지 몰라도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하고, 아무튼 남편이 스트레스 없어 좋다고 하니 저도 버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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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지난해 블루베리 농사로 4천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다. 인건비 빼고 시설비 빼고 나니 정말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예전에 하던 실내 건축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수익만 놓고 보면 혼자라도 다시 나가서 살고 싶다”는 게 아내 이 씨 솔직한 심정이다. 3년 차 농업인에게 닥친 시련이다.
“블루베리는 분명 고소득 품종입니다. 하지만 다른 과수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어요. 시설비도 그렇고 인건비도 그렇고. 지금 우리는 품종 개량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전체 3~4천 그루 정도 돼요. 한 그루당 3~4만원 정도니까 그거 다 바꾸는데도 엄청난 경비가 들죠”
농사를 전업으로 시작한 후 이번이 세 번째 수확이다. 하지만 수확의 기쁨도 잠시, 품질을 높이기 위해 시설 투자에 벌어들인 모든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투자하는 만큼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품질도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친환경 재배다 보니 병충해도 문제다. 약을 마음대로 쓰지 못해 품질 향상이 더 어렵다. 결국 좋은 품종으로 개량하는 것도 필수 선택이 됐다. 이 모든 과정은 돈이 필요하다. 초보 농업인 윤 씨 부부는 땀으로만 짓는 농사는 옛말이란 걸 실감하고 있다.
그래도 미래가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시설 투자와 품종 개량은 즉각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개량한 품종이 출하하기 시작하는데 확실히 품질이 달라요. 더 단단하고, 당도도 높아요. 종전에는 블루베리 열매가 물러서 따는 일도 선별하는 일도 모두 어려웠는데 개량품종은 열매가 단단해서 따기도 쉽고 선별도 편해요. 선별기에 넣어서 네 가지 크기별로 분류하거든요. 이러니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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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농협의회에는 올해 처음 가입했다. 열심히 교육받는 새내기 눈에는 활발히 교류하는 선배들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강소농협의회에서 활동한 지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많은 걸 경험하고 있다.
“농사도 정보력 싸움이란 걸 배웠어요. 다들 각자 경험과 공부한 내용을 서로 나누는데 그 속에서 다시 답을 찾게 되더라고요. 품종은 달라도 결국 ‘농사일’은 같은 거더라고요. 행정에서 이런저런 지원도 받을 수 있고요”
이처럼 윤 씨 부부는 농사꾼으로서 지금 과도기를 겪고 있다. 나름 6년을 준비하고 시작했지만 역시 ‘이상’과 ‘현실’은 온도 차가 컸다. 가끔은 모두 정리하고 돈 잘 벌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길’이 보이니 손을 떼기 어렵다. 마음 편한 전원생활도 힘든 현실을 잊게 한다. 결국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위기 속에 숨어 있는 기회가 보이니까.
예상하지 못한 투자로 아주 힘들었던 만큼 윤 씨는 후배 농업인에게 이런 당부를 남겼다.
“저희가 조언을 할 만큼 경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농업도 투자가 중요합니다. 땅 좀 있다고 무턱대고 덤빌만한 일은 아니에요. 어쩌면 땅값보다 더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할지도 몰라요. 물론 작물마다 다르겠지만, 정말 강소농을 꿈꾼다면 일단 충분한 자본을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농업도 산업이고, 경쟁이다. 고수익을 꿈꾼다면 그만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술력에 대한 투자이건 시설에 대한 투자이건 간에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돈’이 필수다. 윤 씨 부부는 농업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실제 기술과 정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막연한 기대나 의지가 아닌 자본이 필요하다는 냉정한 현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