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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암울한 현실, 얼마나 용기 있게 받아들이냐는 우리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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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현실, 얼마나 용기 있게 받아들이냐는 우리 몫”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7/11/07 09:53 수정 2017.11.07 09:53
항암 투병일기 펴낸 박인태 법무사

대장암 등 다발성 암 극복 과정 담은
‘아직은 죽지 못하는 이유’ 책 발간
투병 중 도움 준 지인에 감사 표현

2년여에 걸친 21번의 항암치료와 4번의 수술, 54번의 방사선치료…


“대장암 4기를 극복한 것은 주변 도움이라는 ‘인연법’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그분들에게 감사할 방법을 고민하다 투병일기에 몇 가지 글을 덧붙여 책자로 냈습니다”
















중부동에서 법무사로 일하고 있는 박인태(61) 씨가 암 4기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2년여 만에 극복한 투병과정을 책 한 권에 담아 지인들에게 보은인사를 하고 있다. 폐와 간까지 전이된 대장암 4기, 식도와 하인두에 초기 암 병변 등 다발성 암 진단을 받은 중증암환자가 담담하게 써 내려간 항암일기 ‘아직은 죽지 못하는 이유’(도서출판 맑은샘)는 지인은 물론 동병상련 고통을 겪고 있는 암 환자에게 잔잔한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박 법무사는 2015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받고 이상을 발견했고, 그해 6월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 확정 진단을 받았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암에 걸렸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믿을 수 없는 현실. 그것도 대장암 4기, 식도암 1기, 거기에 간과 폐에도 암세포가 전이된 최악의 상황. 



확진 후 병원에서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중증암환자로 등록하고, 그때부터 길고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암과의 전투가 시작됐다. 2년여에 걸쳐 21번의 항암치료와 4번의 수술, 54번의 방사선치료라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암환자 중 더 손을 쓸 수 없어 죽은 이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반면 또 다른 3분의 1은 암이라는 병명에 놀라 죽고 만다”

박 법무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진료실 복도 벽면에는 암을 극복한 환자들의 많은 수기가 소개돼 있는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글귀를 발견했다. 바로 “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을 버리세요”였다. 4기 암은 말기가 아니다. 4기 암 생존율은 5~10%에 불과하지만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박 법무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차피 암 치료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생각했죠. 내 생각으로는 병기가 이미 진행한 암 완치 여부는 10분의 7은 신이 정하고, 10분의 3만이 의학 기술을 포함한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영역인 거죠”


박 법무사는 암 투병을 위해 일상생활을 저버리지 않았다. 평소처럼 출근해서 일하고 운동하고 생활했다. 소속한 지역 사회단체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면서 스스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항암치료와 약물 부작용에 따른 고통, 병원 치료가 완치가 아닌 단순히 생명연장을 위한 고식적 치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를 약하게 만들기도 했다. 

 
치료를 위해 서울로 혼자 승용차를 몰고 올라가면서 고속도로 옆 난간을 들이박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생명이라면 교통사고로 죽으면 좀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살이 아닌 사고사라면 가입해 둔 생명보험으로 남은 사람들 고통도 좀 덜할 것 같았기에. 그러나 마음을 다잡은 그는 묵묵히 항암치료와 수술을 받았고,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마침내 건강을 되찾았다. 


박 법무사는 “무엇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장암 말기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표적항암치료제인 ‘얼비툭스’라는 신약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약은 유전자검사 결과가 일치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데, 실제 대장암 말기 환자 60% 정도만 유전자가 일치하고, 40%는 투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암과의 싸움을 ‘전투’라고 표현한 그는 암을 극복한 원동력을 FM(미 육군 야전교범)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치료법들. 주변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역이용한 검증되지 않은 유혹까지….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박 법무사는 병원을 믿고, 기본에 충실히 따랐다. 


그는 전투에 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기왕에 살아왔던 삶을 건드리지 않는다. 암 투병이라는 명목으로 산으로 도피하거나 억지로 병상에 눕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현재 생활방식을 그대로 지키면서 현실을 이겨내자. 둘째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 아픈 것이 벼슬인가. 발병은 내 책임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셋째 이미 벌어진 일, 치료를 즐기자. 넷째 치료는 FM대로 하자. 암 진단을 받고 나면 환자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나 인터넷 등으로부터 수많은 자연치료법과 항암식이 소개되는데, 병기에 따라 환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암 대처방법에 대해 훗날 판단이 잘못됐다면 그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여유를 가지면서. 박 법무사가 정한 원칙은 이제 막 투병을 시작한 환자들이 한 번쯤 되새겨봄 직하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도 암 치유를 위한 치열한 전투 상황은 지나고 종전을 앞둔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암울하고 황당했지만 현실이었고, 어느 날 누구에게나 운명처럼 다가올 수 있습니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고통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지나간 항암일기를 엮어 그동안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그리고 살아있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한 모든 분에게 마음으로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삶은 태어난 자의 권리기도 하지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의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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