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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동에서 법무사로 일하고 있는 박인태(61) 씨가 암 4기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2년여 만에 극복한 투병과정을 책 한 권에 담아 지인들에게 보은인사를 하고 있다. 폐와 간까지 전이된 대장암 4기, 식도와 하인두에 초기 암 병변 등 다발성 암 진단을 받은 중증암환자가 담담하게 써 내려간 항암일기 ‘아직은 죽지 못하는 이유’(도서출판 맑은샘)는 지인은 물론 동병상련 고통을 겪고 있는 암 환자에게 잔잔한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박 법무사는 2015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받고 이상을 발견했고, 그해 6월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 확정 진단을 받았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암에 걸렸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믿을 수 없는 현실. 그것도 대장암 4기, 식도암 1기, 거기에 간과 폐에도 암세포가 전이된 최악의 상황.
“암환자 중 더 손을 쓸 수 없어 죽은 이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반면 또 다른 3분의 1은 암이라는 병명에 놀라 죽고 만다”
박 법무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진료실 복도 벽면에는 암을 극복한 환자들의 많은 수기가 소개돼 있는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글귀를 발견했다. 바로 “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을 버리세요”였다. 4기 암은 말기가 아니다. 4기 암 생존율은 5~10%에 불과하지만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박 법무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차피 암 치료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생각했죠. 내 생각으로는 병기가 이미 진행한 암 완치 여부는 10분의 7은 신이 정하고, 10분의 3만이 의학 기술을 포함한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영역인 거죠”
치료를 위해 서울로 혼자 승용차를 몰고 올라가면서 고속도로 옆 난간을 들이박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생명이라면 교통사고로 죽으면 좀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살이 아닌 사고사라면 가입해 둔 생명보험으로 남은 사람들 고통도 좀 덜할 것 같았기에. 그러나 마음을 다잡은 그는 묵묵히 항암치료와 수술을 받았고,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마침내 건강을 되찾았다.
박 법무사는 “무엇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장암 말기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표적항암치료제인 ‘얼비툭스’라는 신약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약은 유전자검사 결과가 일치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데, 실제 대장암 말기 환자 60% 정도만 유전자가 일치하고, 40%는 투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전투에 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기왕에 살아왔던 삶을 건드리지 않는다. 암 투병이라는 명목으로 산으로 도피하거나 억지로 병상에 눕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현재 생활방식을 그대로 지키면서 현실을 이겨내자. 둘째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 아픈 것이 벼슬인가. 발병은 내 책임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셋째 이미 벌어진 일, 치료를 즐기자. 넷째 치료는 FM대로 하자. 암 진단을 받고 나면 환자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나 인터넷 등으로부터 수많은 자연치료법과 항암식이 소개되는데, 병기에 따라 환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암 대처방법에 대해 훗날 판단이 잘못됐다면 그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여유를 가지면서. 박 법무사가 정한 원칙은 이제 막 투병을 시작한 환자들이 한 번쯤 되새겨봄 직하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도 암 치유를 위한 치열한 전투 상황은 지나고 종전을 앞둔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암울하고 황당했지만 현실이었고, 어느 날 누구에게나 운명처럼 다가올 수 있습니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고통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지나간 항암일기를 엮어 그동안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그리고 살아있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한 모든 분에게 마음으로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삶은 태어난 자의 권리기도 하지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의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