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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 본고장은 양산”… 법기리 요지 복원 당위성 부각..
사회

“사발 본고장은 양산”… 법기리 요지 복원 당위성 부각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7/11/21 09:59 수정 2017.11.21 09:59
법기리 요지 복원을 위한 국제학술심포지엄












ⓒ 양산시민신문


법기리 요지 복원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양산시가 최근 법기리 요지 복원ㆍ정비를 위한 학술연구용역을 발주한 가운데 보다 체계적인 사업 추진을 위한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양산시 주최, (사)언론정보학회 주관으로 지난 16일 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심포지엄은 이기준 양산시의원(자유한국, 동면ㆍ양주) 진행으로 다니 아키라 일본 노무라미술관장, 신한균 사기장, 장기덕 도예학 박사가 주제 발표에 나섰다.

















↑↑ 다니 아키라

노무라미술관장
일본다도문화학회 회장
심차회 회장
예술학 박사
ⓒ 양산시민신문


“고려다완과 밀접한 관련”



법기리 가마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고려다완(한반도에서 만든 찻사발, 일본 다도에서 16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법기리 가마는 ‘종래요’(일본다도가 확립하기 이전부터 혹은 이후에도 한반도에 살던 일반 민중이 사용하는 도자기를 생산해 온 가마)로, 규모가 큰 가마로 알고 있었다. 



법기리 가마터는 20년 전 첫 방문 이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당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10년 전 법기리 가마에서 고려다완이 출토된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때 채집한 사금파리 자료를 보니 ‘종래요’에서 생산하던 사발류와는 분명히 다른 기이라보, 삼족와리고다이, 철화다완, 고혼미시마다완 등을 생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법기리 가마는 사금파리 채집 자료를 볼 때 ‘종래요’와는 다른 형태 사발류를 생산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법기리 가마는 ‘차용요’(종래요 가마 일부 또는 전부를 일시적으로 빌려 일본 취향 사발류를 생산했던 가마)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다만 법기리 가마가 ‘차용요’ 전ㆍ후기를 통틀어 고려다완 생산을 계속했었는지는 가마 발굴 조사 없이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법기리 가마는 고려다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마인 것은 틀림없다. 아쉬운 점은 지금까지 학술 발굴 조사가 전혀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가마터 파괴가 진행될 것이고, 발굴한다고 해도 큰 수확을 얻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크다.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법기리 가마터 발굴 조사가 이뤄진다면 고려다완뿐만 아니라, 한국 도자기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 신한균

도예가
법기도예 이사장
대한민국미술대(국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전통사발 선구자 고 신정희 선생 장남
ⓒ 양산시민신문


“한일 도자 역사 풀 열쇠”



법기리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사발은 일본인들이 ‘이라보다완’이라고 부르는 ‘양산사발’이다. 이라보다완을 양산사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소 거칠게 보이는 사발류는 법기리에서만 생산했기 때문이다.
법기리 가마는 1638년께 부산 왜관(수정동) 근처로 옮겨간다. 그리고 1644년 부산 왜관 안으로 이주한다.



당시에는 법적으로 일본인은 왜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해서 일본인이 디자인해 그린 서계를 조선 역관이 조선 사기장에 전달해 만들었다. 일본인 간섭이 적기에 양산사발들은 일본 디자인임에도 조선식 사발 특성이 많이 내포돼 있다. 하지만 부산 왜관 내에서 일본 도공두(주로 다도 선생)의 직접 지시를 받아 만든 어본다완은 조선 사기장 손길을 거쳤지만 형태는 대부분 완전 일본식 찻사발이다. 


그런데 부산 왜관에서 만든 것과 같은 사금파리가 법기리에서 많이 발견됐다. 이것을 유추해보면 주문 사발을 법기리에서 빚다가 부산 왜관요로 이전한 뒤 공식적으로는 주문 사발을 부산 왜관에서 빚었지만, 비공식으로는 양산 법기리에서 그와 똑같은 것을 계속 빚었다는 뜻이다. 


일본이 주문한 조선사발 중 역관사발이라 불리는 사발이 있다. 왜관에서 만든 어본사발과 차이점이 거의 없다. 바로 이것도 법기리에서 빚었다. 우리 제기였던 도린굽사발(와리고다이자완)이 있다. 법기리에서는 도린굽사발 사금파리도 나왔다. 


법기리 가마터는 한일 간 도자 역사를 풀어주는 열쇠라 생각한다. 이 가마터를 발굴한다면 일본인들이 그토록 아끼고 보물이 돼 있는 조선사발들 미스터리를 푸는 실마리가 반드시 나온다고 확신한다.

















↑↑ 장기덕

도자예술학 박사
경남 최고장인
한국茶陶문화연구소 대표
동아대학교 외래교수
ⓒ 양산시민신문


“철저한 기초조사 우선”



도요지와 같은 매장문화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파괴되거나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번 파괴되거나 훼손된 문화재는 영원히 복구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요지 보존과 활용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도요지 보존 가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도요지 보존과 관리에 대한 지역주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는 도자 문화 확산과 도자 산업 활성화 기반이 된다. 


둘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역 특성과 경관을 잘 드러나 보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요지 가치를 지역 전체로 확대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셋째, 지역 문화재, 마을 시설 등을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생활기반시설을 보수ㆍ확충할 방안을 제시하고, 공공미술 설치를 통해 지역 문화 욕구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함께 교통, 숙박, 볼거리, 먹거리 등과 같은 주변 다른 문화적 네트워크와 도요지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방안이다.


다섯째, 관련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교류와 연구도 중요하다. 또한, 기존 주민단체나 민간단체 등 참여를 통해 지역 유형ㆍ무형 문화재 보호 운동을 확산하는 것도 도요지를 유지ㆍ관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도요지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철저한 기초조사를 통한 관리 시스템 구축과 지역 교육을 통한 문화유산 가치 제고, 지역 특성에 따른 장소ㆍ환경ㆍ경관의 통합 관리와 보호가 필요하다.



■ 법기리 요지는?

도자기 한일 합작 프로젝트 도자기 수출 한류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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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리 요지는 동면 법기리 산 82 일원 1천749㎡ 규모 조선 중기 가마터다. 1963년 국가사적지 100호로 지정됐다. 창기마을 뒤편 산 중턱에서 기슭에 이르기까지 여럿 요지가 남아 있었으나, 근래 대부분 논과 밭으로 개간되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집과 무덤들이 들어서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다.


발견되는 그릇 조각을 보면 마을 근처에 있는 가마터는 대체적으로 17세기 것이고, 산 쪽에 있는 가마터는 대부분 16세기 것으로 추정한다. 산 위쪽에 가마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에 점차 아래로 내려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도자기 형태는 대부분이 사발ㆍ대접ㆍ접시로, 만들어진 모양새가 거칠고 투박하다. 발견되는 백자들 가운데 굽 형태나 질이 일반적인 다른 백자와 다른 종류가 보이는데, 이것은 다른 가마와 달리 일본 주문을 받아 수출용으로 특별히 만들어진 찻잔으로 추정한다. 법기리 요지는 한국과 일본 도자기 교류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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