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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아이들도 겨울은 춥다
오피니언

아이들도 겨울은 춥다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7/11/21 09:43 수정 2017.11.21 09:43













 
↑↑ 장정욱
cju@ysnews.co.kr
ⓒ 양산시민신문 
23년 전 나는 부산에 있는 A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1967년 군부정권 당시 국립고등학교로 문을 연 A고교는 실업계 학교임에도 입학생 성적이 꽤 좋았다. 전국에서 나름 괜찮은 성적의 학생들만 골라 뽑은 덕분에 A고교는 전국 실업계 학교 가운데 취업률, 대학진학률 등에서 손꼽히는 학교였다. 

군부정권이 설립한 학교였기 때문일까? 스스로 ‘명문’이라 자부하는 A학교는 선ㆍ후배 사이 이른바 ‘규율’이 무척 강했다. 선배를 만나면 당연히 인사해야 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름표 색깔’로 선배인지 동급생인지 파악해야 했다. 실습복을 입은 날은 거수경례했다. 실습복을 입는 날엔 모자도 써야 했다. 거수경례를 하도록 한 것도 모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선배를 보고 인사를 안 하는 후배는 없었다. 인사를 안 할 경우 선배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심한 날엔 온몸에 ‘교훈’이 남기도 했다. 교사들은 그런 ‘가르침’을 알고도 묵인했다. 

기숙사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1학년을 ‘지도’하는 역할은 2학년 선배들이 맡았다.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라는 ‘공식’ 직책으로 이들은 1학년 후배를 ‘지도’했다. ‘점호’도 있었다. 매일 기숙사 층별로 복도에 늘어서서 일과를 ‘보고’ 하고 내일 해야 할 과제들을 전달받았다. 가끔은 ‘생활검열’이란 이름으로 기숙사 방안을 뒤지기도 했다. 작은 잘못이라도 적발되면 단체 ‘얼차려’는 당연했다. 

1학년들은 학교 안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서도 안 됐다. ‘실수’ 조차 용납 안 됐다. 버릴 곳 없는 과자 포장지를 주머니에 넣다가 선배한테 걸려 ‘교육’ 받는 경우도 있었다. 억울함을 하소연해봤자 소용없었다.

겨울철 교복 위 외투를 걸치는 행위 역시 허용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공식 허락하기 전까진 장갑, 목도리, 귀마개 등 교복 이외엔 어떤 것도 착용할 수 없었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금지하는 것들이 당시는 교사와 선배들로부터 ‘악습’으로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2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A고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들도 악습을 반복한다. 

“학생들도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지정된 교복 착용만 강요받음으로써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 

지난주 양산시 청소년의회에서 나온 말이다. ‘인권침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의(衣), 식(食), 주(住)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세 요소다. 배고프면 먹고, 추우면 입고, 졸리면 자는 게 ‘사람’이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 먹고, 못 입고, 못 잘 수 있다. 다만 그 선택은 본인 몫이다. 타인이 먹지 말라, 입지 말라, 자지 말라 요구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추우면 장갑도 끼고, 두꺼운 양말도 신고 외투를 걸쳐 따뜻하게 하는 게 당연하다. 교복이 보이지 않는다고, 정해진 복장이 아니라고 못 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학대’다. 정작 어른(교사)들은 내복에 코트, 패딩, 목도리까지 걸치면서 학생들에겐 오직 교복 하나만 입으라는 것은 뻔뻔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어른들이 추우면 아이들도 춥다. 교복 따위가 ‘학생다움’을 대표하지 않는다. 학생다움이 뭔지도 모르겠고, ‘학생다움’이 꼭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 없이 추운 날 아이들을 떨게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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