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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법기리 요지 복원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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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리 요지 복원에 거는 기대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7/11/28 10:10 수정 2017.11.28 10:10

일본 차(茶) 문화인 다도(茶道)에서는 16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든 사발을 최고로 인정한다고 한다. 바로 ‘고려다완’이라고 불리는 사발이다. 

고려다완은 ‘고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사발이 아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사발을 고려다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문물을 생산 시기와 상관없이 ‘고려 물건’이라고 칭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생산한 문물도 마찬가지여서 송이나 원, 명, 청나라에서 생산한 것도 모두 ‘당나라 물건’으로 부른다고 한다. 

고려다완은 조선 시대 전체를 통틀어 생산하던 것이 아니라 대체로 1500년 전후부터 1700년 전후에 걸쳐 약 200년간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기리 가마는 바로 그 고려다완을 생산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법기리 요지에서 발굴되는 사금파리 채집 자료를 볼 때 일본 주문을 받아 일본 취향 사발을 생산했던 차용요(借用窯)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종의 OEM 방식(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사발을 만들던 곳인 셈이다. 
 
특히, 법기리 가마에서는 일본인들이 ‘이라보다완’(伊羅保茶碗)이라고 부르는 ‘양산사발’을 생산했던 곳이다. 양산사발은 표면이 거칠거칠한 특성을 보이는데, 이런 사발류는 법기리 가마에서만 생산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라보사발, 즉 양산사발을 본격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624~1644년 전후로 추정하며, 지금도 인기가 아주 많다. 지금도 이들 사발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할 정도다.

이처럼 법기리 가마는 우리나라와 일본 도자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부 사기장들을 제외하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왔다. 법기리 가마가 있던 터인 법기리 요지는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100호 지정됐지만 낡은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상태다. 

법기리 요지보다 한참 늦은 1985년 11월 7일 사적 제314호로 지정된 경기도 광주 조선백자 요지에는 2003년 경기 도자 박물관 산하 분원 백자 자료관을 설립했고, 2011년 12월 23일 사적 제519호로 지정된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에는 불과 지정 3년 만인 2014년 고흥 분청문화 박물관 공사를 시작해 2017년 10월 개관했다. 사적 지정 54년이 넘도록 ‘터’로만 남아 있는 법기리 요지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늦었지만 ‘법기리 요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 종합정비계획 용역을 마무리한 양산시는 올해 4억3천만원을 확보해 부지 매입에 나섰고, 법기리 요지가 있는 창기마을 주민도 법기도요지복원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복원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법기리 요지 복원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린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법기리 요지 복원 당위성에 공감하며 체계적인 발굴ㆍ복원을 위해 각계각층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기리 요지는 한국과 일본 도자 역사의 비밀을 풀 열쇠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의 관심이 집중될 법기리 요지 복원이 양산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콘텐츠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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