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양산시청 시장 집무실에는 조촐한(?) 기탁식이 열렸다. 중국 칭다오에서 액세서리를 만드는 (주)임페리얼아트 하덕만 대표가 연말 어려운 지역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쌀 200포대를 기탁했다. 6년째 반복해온 일이라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하 대표가 하는 여러 기부 활동을 아는 사람이라면 쌀 200포 기탁 정도는 별일 아닌 게 맞다.
하 대표는 양산초부터 양산중과 양산여중, 그리고 양산고까지 4개 학교 학생들에게 10여년째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다. 학교마다 매달 50만원씩, 1년에 장학금만 2천400만원이다. 매달 ‘적금’처럼 후원하는 터라 아예 계좌에서 자동이체 되도록 조처했다.
중국에서 기업을 하는 하 대표는 중국 현지에서도 각종 기부 활동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 그는 칭다오 지역 학교에 10년 넘게 매달 100만원씩 장학금을 후원한다. 이런 그의 기부 활동으로 2009년에 그는 칭다오 명예시민이 됐다. 2009년과 2015년에는 중국 정부가 선정하는 ‘10대 자선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칭다오에서 ‘청운한국학교’ 이사장으로 초ㆍ중ㆍ고교생 800여명이 미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로 청운한국학교는 대한민국 교육부가 정식 인가한 교육기관으로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곳이다.
↑↑ 하덕만 대표가 지난 13일 지역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쌀 200포를 양산시에 기탁했다. |
ⓒ 양산시민신문 |
하덕만 대표가 이처럼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기부천사가 된 계기가 무엇일까? 중부동에서 태어나 양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하 대표는 26세 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 하나 품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 첫 직장은 뉴욕 맨해튼 액세서리 무역회사였다. 창고에서 허드렛일로 첫 미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업직으로 승진했다. 매사에 성실했던 그를 지켜본 회사 고위직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영업맨’이 된 하 대표는 특유의 끈기를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영업을 이어갔다. 영업 성과도 좋았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나와 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의 첫 사업은 실패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그때 미국에서 사업에 실패한 게 더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당시 바로 성공했더라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겠죠. 제가 깨달은 바로는 너무 일찍 성공하기보다는 쓰라린 경험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첫 사업을 보기 좋게(?) 실패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작은 사무실을 다시 얻었다. 액세서리 사업 특성상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해외 무역업자를 자주 상대하다 보니 국내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중국이다. 2002년 칭다오에 직접 공장을 짓고 (주)임페리얼아트를 설립했다.
그렇게 시작한 임페리얼아트는 현재 5개 자회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만 570명에 이른다.
사실 그의 성공신화는 조정래 소설가가 쓴 ‘정글만리’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정글만리 속 ‘하경만’이란 인물 실제 모델이 바로 하덕만 대표이기 때문이다.
“책 속 액세서리 공장 사장 하경만은 실존 인물로 현지에서 환경미화, 장학금 수여 등으로 신망을 얻어 표창까지 받은 하덕만 대표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소설 속 그의 얘기는 80%는 사실인데,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하 사장처럼만 하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 사장은 매출액 일정 부분을 중국 사람을 위해 쓰고, 공장이 있는 마을의 노인들까지 극진히 모십니다”
조정래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하덕만 대표를 평가한 말이다.
실제 하 대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설 연휴 동안 마을 사람들이 대신 보초를 서면서 지켜주기도 한다. 단순히 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칭다오 주민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정래 작가가 “하 사장처럼만 하면 된다. 경제인들 잘 새겨들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한 것 역시 이런 모습 때문일 것이다.
하덕만 대표 이름은 ‘덕을 만 번 베풀어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하 대표가 중국으로 사업차 떠난다고 할 때 그의 부친은 “동네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예의를 차리는 데 돈 들지 않고, 예의 차려서 손해 볼 일 없다. 인지상정이고, 그게 세상 어디서나 통하는, 사람 사는 도리”라고 조언했다.
하 대표가 어르신 공경과 함께 학생 후원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하 대표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학생들을 후원하고, 중국에 한국학교까지 운영하는 이유가 바로 아이들이 꿈꾸게 하기 위해서다.
“저도 욕심은 있습니다. 어떤 욕심이냐 하면요. 골프에는 박세리 선수가 있었기에 박인비가 있을 수 있고, 축구에 차범근 선수가 있었기에 오늘날 손흥민도 있는 겁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죠. 오늘날 추신수, 오승환은 박찬호라는 선수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죠.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어린 후배들이 먼 훗날 중국,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호령할 때 ‘하덕만’이 있었기에 저런 좋은 기업인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굉장한 욕심이란 걸 알지만 꼭 현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세계무대에서 각자 존경받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길 기원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해마다 숙제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