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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현 본지 편집국장 | ||
ⓒ 양산시민신문 |
대형 사고가 터지면 언론보도는 대개 정형화된 몇 단계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사고 자체에 집중한다. 사고 상황에 대한 전달이다. 사고가 발생한 장소가 어디이며, 그로 인해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또 추가 피해 가능성은 없는지 등이다.
그다음은 표면적인 사고 원인에 대한 접근이다. 세종병원 화재의 경우 증축을 거듭하면서도 안전시설에 설치를 소홀히 했다든지,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심층적인 사고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보도한다. 보통 제도적인 문제를 많이 거론한다. 제도는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아 유명무실하다거나 제도 자체가 부실한 경우, 혹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소홀히 대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들, 혹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희생되고야 말았던 의인들.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국민 감정을 직접 자극하는 보도이기 때문에 언론사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보도거리다.
마지막은 사고 후 처리 과정에 대한 보도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빌미를 제공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나, 부실한 제도, 부적절했던 대응 등이다. 특히 행정부나 방재 관련 기관, 부서 등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앞서 보도한 단계보다 더 크게 보도하는 경향도 있다. 실제 정부가 부실하게 대응했을 수도 있고, 국민이 욕을 하며 화를 풀 수 있는 대상이 정부이기도 하고, 때로는 중요한 정쟁거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사고 이후 우리 사회가, 우리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또는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가에 대해 집중하는 언론은 별로 없다. 보도 분량도 턱없이 적다. 지역신문에 종사하는 한 일원으로서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식을 바꿔가야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결국, 매번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승-전-안전불감증’으로 끝나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16년 대구 서문시장 화재,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3년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 등등. 수많은 사고를 겪고도 안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뒤 불과 열흘 뒤 무술년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강릉 경포해변을 찾은 일부 관광객이 119안전센터 앞에 차량 10여대를 불법 주차해 출동했던 긴급 차량이 복귀하는데 차질을 빚었다는 씁쓸한 소식이 전해졌다. 제천 화재에서 피해가 커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 탓에 소방차량이 제때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간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다.
“셔터가 내려져 있어 소방서가 쉬는 날인 줄 알았다” 차를 옮겨 달라는 소방대원 전화를 받고 나타난 한 차주의 황당한 변명. 그는 ‘해 뜨는 것만 보고 곧바로 갈 건데, 당장 큰일이 벌어질 것 같지도 않은데, 소방서 앞에 잠깐 주차해도 되겠지’라고 나름 융통성을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 일을 이리저리 막힘없이 잘 처리하는 재주나 능력, ‘융통성(融通性)’. 때로는 융통성 없음이 필요하다. 안전에는 타협이 없어야 한다. 나부터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며칠 전 아침 직원들이 모두 출근한 직후 본사가 입주해 있는 5층 건물 전체에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그러나 서로 멀뚱멀뚱하니 눈치만 볼 뿐 누구도 먼저 대피하지 않았다. 아래층에 있는 다른 회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양산소방서에서 출동해 확인한 결과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판명됐지만 불과 얼마 전 제천 화재와 밀양 화재를 보고서도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나부터 아직 변한 것이 없었다. 어제 괜찮았다고 오늘도 괜찮은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