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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우리는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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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지 않았다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8/03/06 10:52 수정 2018.03.06 10:52
99주년 3.1절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
오늘 10일 종합운동장, 삼일로 일대
3.1만세운동 재현 거리행진 열려
양산읍 만세운동 3월 27일, 4월 1일
지역 만세운동 역사 되새겨 봐야













 
↑↑ 홍성현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내 마음은 지지 않아” 

지난해 12월 작고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송신도 할머니의 생전 말씀이다. 송 할머니는 일본에서 살았던 한국인 피해자로는 유일하게 199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인권운동가다.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되기까지 10여년을 법정에서 싸웠다. 패소가 확정된 뒤 “재판에서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아”라는 말로 큰 울림을 남겼다. 송 할머니 유해는 지난 2월 9일 고국의 품에 돌아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안치됐다. 


서울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명예회복을 염원하기 위해 “내 마음은 지지 않아”라는 문구를 서울광장 꿈새김판에 담아 3월 말까지 게시한다. 3.1절을 맞아 SNS에서도 손글씨로 ‘내 마음은 지지 않아’를 쓴 뒤, 해시태그(#)를 달아 올리는 캠페인이 진행됐다. 여기에 유명 연예인이 동참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올해는 항일독립운동의 분수령이 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9주년 되는 해다. 3.1절을 맞아 일제에 맞섰던 선열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의 다양한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양산시도 지난 1일 양산대종 종각 일원에서 기념식을 진행했다. 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삼창, 양산대종 타종 그리고 기념음악회가 이어졌다. 



오는 10일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울산ㆍ양산)지구 제3지역이 주최ㆍ주관하는 ‘양산 3.1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린다. 클럽 회원과 시민, 학생 등이 태극기를 들고 양산종합운동장을 출발해 전자랜드 사거리와 상공회의소 사거리를 지나 삼일로 태극기거리(경남은행 사거리~옛 시외버스터미널)를 거쳐 다시 양산종합운동장으로 돌아오는 거리행진은 올해로 12회를 맞이하며 민간 주도로 열리는 양산지역 대표 3.1 만세운동 기념행사가 됐다.



이날 열리는 3.1만세운동 재현행사에 양산지역 만세운동 역사를 알고 동참한다면 더욱 뜻깊은 기념행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내용을 정리해봤다. 

 
양산향토사연구회가 2009년 발간한 ‘양산항일독립운동사(증보판)’에 따르면 서울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양산지역까지 확대됐다. 양산지역 만세운동은 양산읍에서 두 차례 하북면 신평지역에서 한 차례 일어났다. 


양산읍 만세운동은 중부동에 살던 청년 엄주태(당시 20세)로부터 시작한다. 엄주태는 3월 11일 부산진 일신여학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과 의분에 차 3월 12일 혼자 부산 일원을 돌아보고 동래에 있는 친척 집에서 1박을 했다. 이튿날인 13일에는 동래고보 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한 뒤 독립선언서 등을 감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이웃 선배인 전병건과 의논해 양산의거를 계획했고, 3월 27일과 4월 1일 두 차례 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양산군 3월 27일 폭민 2천이 헌병분견소와 군청으로 습격해오므로 공포를 발사하고 5명을 체포하고 해산시켰다” -헌병사령관 보고문


“양산군 3월 27일 부산 북방 약 8리의 양산에서 군중이 오후 1시 반경에 독립운동을 개시해 헌병분견소로 몰려와 난폭함에 공포 2발을 발사, 해산시켰다” -조선군사령관 보고문


“양산군 3월 27일 양산시일(장날)을 이용해 청년을 중심으로 한 약 2천의 군중이 불온문서를 배포하고 운동을 개시해 시내를 돌아다니므로 극력해산을 명했으나, 수긍하지 않고 도리어 동지 헌병분견소와 군청에 몰려와 폭행을 하려고 함으로 공포를 발사해 수모자 5명을 체포하고 해산시켰다” -고등경찰 보고문


“양산군 4월 1일 오후 2시 1천500여 군중이 양산읍내에서 운동을 개시해 동지 헌병분견소로 몰려오므로 수모자 3명을 체포하고 오후 4시 해산시켰다” -고등경찰 보고문

하북 신평 만세운동은 불교계와 연관이 깊다. 불교계 오택언은 한용운 선생의 밀지를 받고 독립선언서 등을 휴대한 채 3월 5일 통도사에 도착했다. 그는 통도사 승려, 보통지방학림 학생대표 김상문 등과 의논해 거사를 추진하던 중 비밀이 누설돼 3월 7일 서울로 압송됐다. 그러나 신평 장날인 3월 13일(혹은 3월 29일 또는 30일) 계획대로 거사가 일어났다. 신평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일제 자료를 근거한 독립운동사 자료집에는 3월 30일로, 우리측 자료인 독립운동사에는 29일(30일)로 기록돼 있고, 그 외 자료는 모두 3월 13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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