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어르신 3명을 반대편 차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와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 2명은 현장에서, 나머지 1명은 병원에 후송돼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은 사고원인으로 운전자 과실(부주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본지 730호, 2018년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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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가 발생한 원동로(울주군~배내골~원동역)는 확포장 공사 이후 과속차량이 증가했다, 특히 사고 발생지점은 내리막길로 별도의 과속방지시설이 없어 과속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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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흔히 ‘예기치 못한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끔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즉, 사고를 막거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이번 사고가 그렇다. 경찰 설명대로 운전자 과실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면, 위험 요소를 줄이지 못한 ‘도로 시설’도 최소한 사고의 간접 원인은 된다는 게 해당마을 주민들 주장이다.
고지등마을 주민 박아무개(41) 씨는 이번 사고에 대해 ‘예견된 사고’라고 단정했다. 박 씨는 “도로를 정비(확ㆍ포장)하고부터 과속 차량이 워낙 많아서 주민들이 과속방지턱 설치를 수차례 요구했는데 매번 거부됐다”며 “주민들이 위험을 경고했지만 행정에서 안일하게 생각한 결과 이번에 세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해 9월에도 윤아무개(34) 씨가 경상남도와 경남지방경찰청에 과속방지턱 설치를 요구했다. 당시 윤 씨는 “마을 앞 도로에 오토바이와 차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다녀서 마을 어르신들이 길을 건널 때 엄청 위험하다”며 “과속(단속)카메라나 과속방지턱 설치가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하며 시설 설치를 요구했다.
윤 씨는 “(주민들이) 몇 번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양산시(경남도)에서는 명확한 답변 없이 무조건 안 된다고만 했다고 한다”며 “길을 건널 때,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이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배내골에서 내려오는 차는 커브길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 속도까지 빨라서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지적한 위험이 이번 사고로 현실이 된 셈이다. 해당 도로(원동로, 지방도69호선)는 울주군에서부터 배내골을 지나 원동역까지 이어진다. 20여년 전 도로 확ㆍ포장공사 이후 원동지역 중심 도로로 많은 차량이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잘 닦인’ 도로 때문에 과속 차량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배내골에서 원동마을 방향은 6km가량 계속 내리막이다. 운전자가 가속기에서 발을 떼고 있어도 고지등마을, 내포마을을 지날 때 시속 80~90km를 가볍게 넘긴다. 배태마을부터는 곡선 구간도 많지 않아 과속 위험을 더 높이고 있다. 별도의 과속 방지 시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도로가 마을을 관통한다는 점도 사고 위험이 높은 이유다. 어르신이 많고 이웃 간 왕래가 잦은 시골마을 특성상, 그리고 도로 주변에 논밭이 많아 활동 인구가 많다는 점 등은 보행자 사고 위험을 충분히 예측 가능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수년 전부터 과속방지시설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실제 과속방지시설이라곤 내포마을 인근에 그려 놓은 ‘가상’과속방지턱 2개가 전부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즉 내리막길이 계속되는 고지등마을 근처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행정당국에서는 과속방지시설 요구에 “과속방지턱 설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남도로관리사업소는 지난해 9월 과속방지시설 설치 요구에 대해 “해당 마을 인근에 가상과속방지턱이 설치돼 있고, 운전자 감속을 유도하는 표지판이 2곳 설치돼 있어 현지 교통상황과 여건을 고려할 때 과속방지턱 추가 설치가 제한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앞으로 마을 구간 진입 전 ‘마을 앞 천천히’ 등 교통안내 표지판을 추가 설치해 운전자 감속을 유도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금까지 달라진 건 없다.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단속카메라 설치를 요구했지만 양산경찰서는 예산 문제로 설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산경찰서 교통관리계는 “과속단속카메라는 워낙 고가 장비라 지방청 차원에서도 2년에 1대 정도 배정할 만큼 설치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통관리계는 “예산 문제가 걸리다 보니 통행량 등 우선순위에서 밀려 해당마을에는 현재 설치 계획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다만 양산경찰서도 과속방지 시설 설치 필요성은 공감했다. 실제 양산경찰서도 수차례 경남도로관리사업소 등에 과속방지턱 설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경남도로관리사업소는 마을 주민 요구 때와 마찬가지로 “교통상황과 여건을 고려할 때 과속방지턱 설치는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결국 ‘교통상황 여건’ 때문에 과속을 막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일어난 사고로 3명이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다. 3명의 목숨을 앗아간 도로 위에는 오늘도 많은 차량이 질주하고, 그 사이를 주민들이 위태롭게 오가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