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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몇 발짝 덜 걷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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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발짝 덜 걷겠다고…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8/11/20 09:25 수정 2018.11.20 09:25














 
↑↑ 홍성현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한국에서 26년 동안 살아온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 씨가 자신의 체험을 엮어 발간한 책이 있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이 1999년이니, 상당히 오래 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요즘 말로 ‘팩트 폭력’ 또는 ‘팩트 폭행’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의 주장이나 행위에 대해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팩트(fact, 사실)를 제시하면서 잘못된 점을 꼬집는 행위다. 폭행이나 폭력으로 부를 만큼 아프고, 모두 맞는 말이기에 반박할 수도 없다. 요즘은 ‘뼈 때린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책 내용 가운데 몇 구절을 살펴보자.



“병목 지점을 통과할 때 운전자들이 보이는 태도 역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차이가 많다. …<중략>… 요즘에는 나아진 편이지만, 아직도 일부 염치없는 운전자는 갓길을 통해 터널 코앞까지 와서 ‘새치기’를 한다. 이럴 때 차창을 내리고 손을 내밀어 보이거나 한껏 애교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하면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못해 양보해 준다. 인정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양보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양보해 주면 그런 얌체족의 버릇을 영원히 고쳐 놓을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경우 절대로 끼어들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 차가 앞차 범퍼에 닿는 한이 있어도 한 치의 빈틈도 남겨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얌체 운전자가 섣불리 끼어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경찰이 나타나서 단속을 한다” -‘선천적 질서의식 결핍증?’ 중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 중 한국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방법은 또 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바퀴가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아 달라는 스튜어디스의 간곡한 부탁이 몇 번이나 거듭된다. 그런데도 일단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았다 싶으면 주섬주섬 일어나서 가방을 챙겨 들고 출입문 앞에 서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틀림없이 한국 사람이다” -‘총체적 무질서, 아 대한민국!’ 중에서



“일요일 아침에 교회 근처를 지나다 보면 두 가지 풍경을 볼 수 있다. 예배 보러 온 사람들이 제멋대로 차를 세워 놓은 탓에 다른 차가 마음대로 지나갈 수 없는 교회가 있고, 목사인지 집사인지 모르지만 어깨에 띠를 두른 사람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하는 교회가 있다. 그나마 무질서한 쪽보다 낫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교회라면 굳이 사람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없어야 정상이다” -‘교통 법규부터 지키시오, 아멘’ 중에서



책이 나온 지 20여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양산시의 모습도 겹쳐 보인다. 최근 양산시는 가촌 일대 주차난 해소를 위해 부산대 양산캠퍼스 유휴부지에 320대 규모 임시주차장을 조성했다. 게다가 무료다. 상황이 나아졌을까? 주차장은 텅텅 비었고, 도로 변 불법 주차는 여전했다.



가을이면 경치 좋은 산으로 트레킹을 하러 간다. 이곳에서 웃지 못한 장면을 본다. 조금이라도 숲길 입구 가까운 곳에 주차하려는 몸부림이다. 걷겠다고 나와서는 조금이라도 덜 걷겠다고 노력(?)하는 모습. 이런 시민의식이라면 아무리 주차장을 만들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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