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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현 편집국장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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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는 아직 들뜨거나 느슨해진 연말 분위기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차분한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그렇지만 시곗바늘은 어김없이 2018년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불과 30여일 남짓 남았다.
동네 신문에서 기자 일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연말을 실감하는 시점은 바로 돌봄 이웃을 위한 성금과 성품 전달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올해도 지역 기업체를 비롯해 각종 기관ㆍ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다. 저소득층, 홀몸 어르신, 소년소녀 가장, 한부모 가정 등 주위를 둘러보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자는 활동이 캠페인처럼 벌어지기는 시기다. 사람이 몰리는 시내 중심지에는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작은 도움이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며 기부를 독려하기도 한다.
해마다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소에도 이만큼만 관심을 보였으면…’하는 생각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돌봄 이웃을 위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을 폄훼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어버이날에만 부모님 선물을 챙기면서 ‘평소에도 잘해야 하는데…’라고 자책하는 불효자의 마음과 같다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세심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것도 좋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존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과거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만 지금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해야 하는, 이른바 ‘착한 영향력의 시대’이다 보니 시혜자가 수혜자와 직접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알리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수혜자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과 신원이 공개되고,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보도되기도 한다.
특정 시기나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가 아닌 평소에, 수혜자가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그것을 겸연쩍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은 도움의 기본이어야 한다. 양산시가 시행하는 각종 복지정책도 마찬가지다.
2011년 양산시는 결식이 우려되는 아이들을 위해 ‘희망양산카드’라는 이름의 아동급식 전자카드를 도입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한부모 가정 등의 아이들이 학기 중 토ㆍ공휴일이나 방학 중 점심을 거르지 않도록 카드를 지급한 것이다.
당시 양산시는 종이로 된 기존 급식 상품권 대신 전자카드를 도입하면서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맹점을 다양하게 확보해 아이들이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행정편의를 내세운 반인권적인 정책이라는 이유로 지역아동센터 등 아동복지계의 큰 발발을 불러왔다.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아이들에게 심리적 위축감을 주는 결제방식과 한 끼 4천원에 불과한 비용, 부족한 가맹점 종류와 수다. 가장 큰 비판은 마음 여린 아이들에게 급식카드를 쓰도록 해 스스로 ‘가난한 집 아이’라는 낙인을 찍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 끼 4천원으로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가맹점 절반이 편의점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나아졌을까? 그동안 물가가 치솟았지만 급식비는 여전히 4천원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최소 6~7천원은 있어야 식당에서 정식 한 그릇 먹을 수 있고, 웬만한 편의점 도시락도 5천원에 가까운 상황에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아이들 식사의 질은 오히려 훨씬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양산지역 가맹점 273곳 가운데 상당수가 편의점인 현실 또한 변하지 않았다.
양산시는 경남도와 아동급식위원회가 한 끼 급식비를 4천5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양산시외식업지부 등에 가맹점 가입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수혜자 존중, 아이들의 자존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논의는 빠져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양산지역에서 아동급식 전자카드를 이용한 아이들은 1천596명이다. 적지 않는 수다. 이 아이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며 눈칫밥을 먹고, 설령 급식비가 4천500원으로 오른다고 하더라도 그 돈으로 사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7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