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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마을살이, 이웃살이, 더부살이… 소박하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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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살이, 이웃살이, 더부살이… 소박하게 그렇게”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8/12/26 09:43 수정 2018.12.26 09:43
카페사회사업가 ‘소소봄’ 이우석 대표
경찰서 인근 택지에 ‘소소서원’ 개점

경쟁 벗어나 이웃과 함께하고파
직접 건물 짓고 마을 사업 시작
주민 위해 2층엔 사랑방도 만들어

모두 함께 살아가는 ‘마을’ 꿈꿔
“소소하게 함께라서 ‘소소서원’”

조선시대 서원(書院)은 교육기관이자 마을자치 운영기구였다. 물론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기관이다. 카페사회사업가 이우석 대표가 꿈꾸는 서원의 모습은 조선시대 서원과 닮은 듯 다르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부분은 닮았다. 교육 기능도 있다. 하지만 자치 기구는 아니다. 이 대표의 서원은 공동의 공간이자 소통과 나눔, 만남과 대화의 장(場)이다 .

지난 8월 양산경찰서 인근 택지에 커피전문점 한 곳이 문을 열었다. 2011년 범어신도시에 문을 열고 8년 가까이 이웃과 함께하던 ‘소소봄’이 ‘소소서원’이란 이름의 마을 ‘사랑방’이 된 것이다.

ⓒ 양산시민신문


“소소봄을 처음 시작할 때 배움과 세움이 있는 공간을 꿈꿨어요. 마을 청년들이 덜 외로웠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취업에 힘들고 공부에 지칠 때,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덜 외롭게 말입니다”

그렇게 이 대표는 만 7년 세월을 이웃과 만났다. 엄마 손 잡고 처음 카페 문턱을 넘었던 아이가 어느덧 성인이 됐다. 새내기 대학생은 사회 초년생으로, 복학생은 이제 가장이 됐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성장했지만 이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치열함’ 때문이다.

소소봄은 상가가 즐비한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그곳은 치열했다. ‘경쟁’은 당연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경쟁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고, 패자는 상처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카페사회사업가에겐 경쟁 자체가 가시 달린 옷 같았다.

그래도 싸웠다. 원하지 않았지만 살아남아야 했기에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8년을 버틴 끝에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 덜 경쟁하고, 덜 치열한 곳에서 더 많이 함께하고 더 많이 서로 다독이고 싶어 이 대표는 터를 닦고 서원을 세웠다. 소소하게 함께 하는 공간. ‘소소서원’으로 이름도 바꿨다. 2층에 ‘사랑방’을 만든 것도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다.

“범어신도시에서 힘들었던 건 살아남는 것이었어요. 솔직히 그곳을 떠나 여기로 오는 데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에요. 여긴 보다시피 오가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건물 짓는 데 신경을 썼어요. 가보고 싶은 카페, 소비하고 싶은 건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이 소비로 이어지게 노력했죠. 디자인은 아내 도움이 컸습니다”

경쟁하긴 싫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사람 드문 이곳에선 더 그렇다. 이 대표 스스로 하고 싶은 사업들도 우선 카페가 살아남아야 가능하다.

ⓒ 양산시민신문


“이곳으로 옮긴 건 살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었어요. 나름 지속가능성을 본 겁니다. 카페를 오래하고 싶거든요. 적어도 집주인 때문에 쫓겨나거나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건 겪고 싶지 않아서요”

젠트리피케이션은 침체했던 도심 개발이 가속해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임대료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원주민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살고 싶어서 터를 옮겼다는 그의 말, 여기서 오래오래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남의 일이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소소봄이 이미 갖춰진 도시에서 시작했다면 소소서원은 이제 갖춰지기 시작하는 도시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천천히 뿌리내리고 있죠. 소소봄에서 했던, 그리고 하지 못했던 시도들을 해볼 겁니다. 내년엔 백일장도 계획하고 있어요. 조선시대 과거를 보던 것처럼 바닥에 앉아서 제시한 시제를 보고 글을 쓰는 거죠. 재미있을 것 같아요”

소소봄 시절은 혼자여서 힘들었다고 했다. 기획만 하고 시도하지 못했던 많은 사업 역시 함께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니까 오래가기 힘들었다. 함께 사는 마을을 꿈꾸면서 정작 이 대표는 혼자였다.

“이곳에선 함께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동네 책방 대표님들 도움으로 백일장도 하고, 북페스티벌이나 쉐어링 같은 것도 하고 싶어요. 명절 때 송편을 같이 빚는 것도 좋죠. 이맘때면 김장도 함께하고요. 우리 조상들이 늘 함께하던 것들을 이 시대, 이곳에서 해보고 싶어요”

소소봄은 동네 속에서 소박한 삶을 꿈꾸던 공간이었다. 그 소박한 꿈이 이어진 게 소소서원이다. 소박해서 행복한 삶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소소서원 문을 두드려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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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 대표 “소외 없는 세상을 꿈군다”


‘소소서원’ 이우석 대표 직업은 ‘카페사회사업가’다. 생소하다. 카페사업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함께 어우러진 사회를 통해 소외됨 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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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대표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회복지사다. 카페사업 전에는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분명하게 구분된 사회복지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보편적 복지를 공동체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카페사회사업가’다.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고 카페공간을 활용하면서 누구나 보편적 복지를 누리는 게 목표다.

이 대표는 그 첫 번째 방법으로 지역 연대를 선택했다. 소소봄은 판로 개척이 힘든 사회적 기업의 든든한 판매처였다. 장애인들이 만든 베이커리나 친환경 양초 등을 팔았다. 커피 리필 값은 오롯이 지역아동센터에 전달했다. 두 번째는 다른 지역과 연대하기다. 이 대표는 ‘마을카페’가 지역 곳곳에 뿌리내리길 원한다. 그래서 컨설팅을 지원한다. 마지막은 주민과 교류다. 소소봄 시절 마술공연이 그랬고, 소소서원에서 펼칠 백일장과 북콘서트가 그런 활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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