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됐이요. 더 열심히 하란 의미겠죠. 봉사 시간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것도 아니에요. 봉사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 양산시민신문 |
박 씨가 양산에 터를 잡은 건 12년 전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양산으로 이사와 외로움에 시작한 게 봉사라고 한다. 인터뷰 내내 유쾌한 모습만 보였던 박 씨지만 양산에 처음 왔을 땐 힘들었다. 우울했고, 외딴섬에 혼자 남아있는 것 같았다고. 봉사로 남을 돕겠다는 게 아니라 봉사를 통해 스스로를 도운 거다.
“너무 우울해서 시작한 거에요. 우선 사람을 사귀어야겠다 싶어서 아파트 부녀회에 들어갔죠. 처음 한 게 아파트 도서관 봉사였어요. 책을 정리하고 뭐 그런 것들이었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책 정리라는 소소한 봉사를 시작으로 박 씨는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자신이 가진 미용기술을 바탕으로 많은 이웃을 만났다. 어르신들을 만나 머리도 손봐주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겐 손톱미용에 화장법도 알려줬다.
좋았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봉사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냥 즐거웠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례놀이는 그냥 같이 즐겼다.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행복하니 봉사 대상자들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박 씨는 체육대회, 걷기대회, 도서관, 평생학습박람회, 경로당, 초등학교까지 가리는 봉사가 없었다.
모든 자원봉사자가 마찬가지겠지만, 남는 시간 대부분을 자원봉사로 보내는 사람들은 가족의 도움 없이 힘들다. 박 씨도 남편과 두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큰딸이 고3, 작은딸이 고1입니다. 고3 딸아이 입장에서 좋은 학부모는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공부하는 데 뭘 제대로 도와준 기억이 없네요. 밥도 대충 차려놓고 나가기 바빴으니까요”
공부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도 박 씨는 큰딸이 자신과 함께 봉사활동에 나서는 걸 뿌듯해했다.
“딸이 어렸을 때 봉사활동을 같이 다닌 적 있어요. 절 닮아서인지 네일아트도 잘해요. 요양원도 몇 번 같이 갔는데 싫어하지 않더라고요. 억지로 가자고 한 적 없는데…. 그래서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딸과) 같이 하고 싶어요”
박 씨는 “봉사는 그냥 편하게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부담부터 가질 이유가 없다는 거다. 두 딸의 엄마, 한 남편의 아내임에도 10년 넘게 열심히 활동한 자신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순수한 의도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봉사를 다니다 보면 일부 봉사자들은 셈을 하는 게 보여요. 자신한테 이익이 되는, 그런 봉사만 하려고 해요. 싫죠. 그런 모습들 보면 참 기운 빠져요. 이왕 하는 봉사, 정말 진심으로 하면 더 좋을 텐데 말이에요”
박 씨의 봉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힘닿는데까지, 더 오랜 세월 마음껏 봉사하고 싶다. 그동안 묵묵히 도와준 가족이 있기에 가능했던 봉사. 이제 그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다. 나아가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이웃과 살 부대끼며 행복을 나누고 싶다. 그에게 봉사는 서로 행복을 주고받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