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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100년 전 그날, 3월 13일 ‘신평장터 만세운동’ 재연..
사회

100년 전 그날, 3월 13일 ‘신평장터 만세운동’ 재연한다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9/01/22 09:04 수정 2019.01.22 09:04
■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주최ㆍ주관
1919년 당시 경남 첫 만세운동 최초 재연

“기존 3.1만세운동 재연행사와 연계해
독립 만세운동 역사적 의미 고취할 것”

100년 전 하북 신평장터를 가득 채웠던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다시 한번 울려 퍼진다.

올해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정수)가 1919년 당시 경남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하북 신평장터 만세운동’을 최초 재연한다. 양산시는 이를 해마다 라이온스협회 주최ㆍ주관으로 열리는 3.1만세운동 재연행사와 연계해 대규모로 진행할 방침이다.

양산시와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신평장터는 통도사 승려와 학생들이 주도해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 등을 배부한 뒤 독립에 관한 연설과 함께 경남 최초로 만세 시위를 벌였던 곳이다.

통도사 출신인 오택언(1987~1970)은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만해 한용운 스님의 밀명에 따라 백성욱ㆍ김상헌ㆍ신상완ㆍ정병헌ㆍ김대용ㆍ김봉신ㆍ김법인 등과 함께 서울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만해 스님의 밀지를 품고 3월 5일 통도사에 도착했다.

이후 통도사 지방학림 학생대표였던 김상문과 통도사 스님 등에게 서울 만세운동 과정을 설명하고, 거사를 추진하던 중 비밀이 누설돼 3월 7일 일본 경찰에 검거, 보안법 위반으로 서울로 압송됐다.

하지만 통도사 보통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대표 김상문을 비롯한 양대응, 박세문, 이기주, 김진오 스님 등 40~50여명의 학생과 불교강원 학인 승려 10여명, 통도사 거주 승려 10여명은 예정대로 장날인 3월 13일 신평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했다.

ⓒ 양산시민신문

당시 신평장터 동쪽 도로에 짚으로 만든 밧줄을 놓고 줄다리기를 준비 중이었는데, 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주동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시장 사방으로 흩어졌고, 붉은 띠 모자를 쓴 사람을 따라 이동하면서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날 일어난 만세운동은 인근 지역에 영향을 줬다. 3월 20일 밀양 표충사에 통도사 승려 50여명이 찾아가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모의해 4월 4일 단장장날 만세운동을 벌였다.

양산에서는 전병건과 엄주태가 주동해 양산장날인 3월 27일 만세운동을 벌였다. 4월 1일에는 이귀수와 류계문 등이 주동이 돼 2천여명이 모여 2차 만세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4월 2일 언양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후 신평에서는 5월 4일 주민 400여명이 모여 다시 만세운동을 벌였고, 지도부 지휘에 따라 일본 헌병 무기까지 빼앗고 언양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이러한 신평장터 만세운동을 그대로 재연한다. 통도사 주지 스님이 독립선언문 낭송과 함께 밀지를 작성해 신평장터와 양산장터, 언양장터 시위 지도자에게 전달한다. 통도문화의거리 일원에서는 줄다리기와 독립선언문 낭송, 만세삼창, 거리 행진을 진행하고, 양산장터로 전달한 밀지가 도착하면 라이온스협회 주최ㆍ주관하는 3.1만세운동 재연행사로 이어진다.

박정수 이사장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과 연출로, 경남 최초 만세운동인 신평장터 만세운동의 역동성을 재현하고자 한다”며 “독립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고, 지역 독립운동사를 재정립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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