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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은 독립운동의 성지… 기억하지 않으면 의미도 없다”..
사회

“양산은 독립운동의 성지… 기억하지 않으면 의미도 없다”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9/03/12 09:24 수정 2019.03.12 09:24
■ 신평 만세운동 100주년 학술발표회
동부경남 최초 만세운동 재조명
민족사적 자존감과 자긍심 고취

양산시ㆍ독립운동기념사업회 등
양산 독립운동가 선양사업 추진
각계각층 힘 모아야 ‘한목소리’

ⓒ 양산시민신문

100년 전,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은 우리 민족이 가진 불굴의 자주성을 세계에 알린 범국민적 저항운동이었다. 우리 민족 깊숙이 뿌리내린 그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다.

그해 3월 13일 양산 하북 신평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동부경남 최초의 만세운동이다. 통도사 스님이 주축이 된 만세운동은 양산 의거를 비롯해 언양과 밀양 등 인근 만세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양산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지낸 윤현진이나 의병장 서병희를 비롯해 신평 만세운동 주축이었던 양대응과 독립 자금을 조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방에 출입하며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기꺼이 감수한 김구하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거목을 배출했다.

하지만 그동안 양산은 이런 역사에 무관심했다. 신평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인물 가운데 공적이 확인된 사람이 10여명이 넘지만, 서훈을 받은 사람은 2명뿐이다.

이런 가운데 신평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앞으로 양산지역 선양사업 방향을 설정할 첫 학술발표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 8일 통도아트센터 강당에서 열린 ‘양산 신평 3.1만세운동 100주년 학술발표회: 경남 최초의 3.1만세운동을 조명하다’가 그것이다.

양산시와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ㆍ주관한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이병길 향토사학자와 최두헌 통도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 김명관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발제자로 나섰고,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이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인근 지역 항일운동에 불붙인 도화선

ⓒ 양산시민신문
이병길 향토사학자는 ‘양산 통도사 신평 독립만세운동과 의의 그리고 주역들의 삶’을 주제로 신평 만세운동 전후 배경과 전개 과정, 역사적 의의 등을 되짚었다.

그는 신평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경남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하북 신평은 우편소도 없는 전형적인 빈촌인 면소재지로, 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곳이라 신평 독립만세운동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지역 주민이 이구동성으로 3월 13일 만세운동이 일어났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평 독립만세운동은 통도사 스님들이 주축이었기에 은밀하고 치밀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그만큼 피해가 적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신평 독립만세운동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이후 각종 의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3월 13일 신평 독립만세운동 이후 5월 4일 다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일본 헌병 무기까지 빼앗아 언양까지 진출했다. 또한 3월 31일 해인사와 4월 4일 표충사 만세운동을 비롯해 3월 27일과 4월 1일 벌어진 양산장터 만세운동, 4월 2일 언양 만세운동에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병길 향토사학자는 “양산은 1908년 서병희, 김병희 의병장이 활동했고, 1919년 만세운동이 양산 장날 두 번이나 일어났다. 1932년 양산 농민이 양산경찰서를 습격해 가장 강렬하게 항일운동을 한 고을이다. 신평 만세운동은 경남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임에도 자료 부족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며 “역사는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며, 기억하지 않으면 의미도 없다”고 마무리했다.

통도사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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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헌 학예실장은 ‘통도사 승려들의 독립활동’을 주제로 통도사 만세운동 주역들 활동을 되짚었다. 그는 특히 신평 만세운동 주역이지만 이전 행적에 대해 알려진 바 없던 오택언과 박민오의 흔적을 ‘성해선사수연시(聖海禪師壽宴詩)’와 ‘역사(歷史)’의 기록을 통해 최초로 밝혀내 주목을 받았다. 성해선사수연시는 성해 남거 선사(1854~1927)의 수연을 축하하기 위한 일종의 축시집이다. 역사는 1941년 음력 11월에 제작됐고, 통도사 종무의 각종 규칙을 기록하고 있다.

최 실장은 기록에서 살펴볼 때 “오택언이 1915년 2월까지 통도사에 있었으며, 한용운과 백초월에게 수학하며, 이들의 국가의식과 시상에 직ㆍ간접적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며 “다만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1914년 당시 강원에서의 위치로, 그때 강원 과정에 대한 자료가 없어 오택언의 중앙학림 입학과 심문조서에서 1919년 당시 스스로 중앙학림 2학년생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시간차를 좀 더 살펴야 할 듯하다”고 설명했다.

박민오에 대해서는 “동기생 오택언이 강원을 마치고 중앙학림에 입학한 것과 달리 중앙학교(중앙고등학교 전신)에 입학했고, 1919년 2월 28일 밤 10시 한용운에 의해 소집돼 다음 날 파고다 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황인규의 ‘통도사 승려 박민오의 생애와 활동’에 따르면 통도사 승려 출신으로 3.1운동 때 중앙학교 학생대표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불교계 독립운동가이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 최초로 하버드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통도사에서 은사를 성해 혹은 구하로 추측한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 친일 스님으로 비난을 받았던 김구하 스님에 대해서는 “친일로 보이는 반친일적 행동을 통해 선배, 동료, 후배들 손가락질과 대중의 몰매질을 감수해야만 했다. 구하의 행적은 한용운과의 관계, 독립자금 조달에 대한 구체적 증거나 후학의 증언을 통해 이제는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며 “특히 해방 이후 구하가 사제인 경봉과 함께 김구 선생을 찾아간 것은 우리가 쉽게 흘려보낼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구하는 통도사 초대 주지를 지내면서부터 친일과 항일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했고, 해방 후에는 많은 이에게 친일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현실은 충절을 위해 변절을 선택한 독립운동가였다”며 “앞으로 구하와 관련한 연구가 진행되겠지만 그 전에 꼭 전제해야 할 것은 당시 통도사 주지, 통도사를 대표하는 승려가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통해 민족 해방을 염원한 대표적 인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콘텐츠로 독립정신 계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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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관 상임이사는 ‘양산항일독립운동의 문화콘텐츠 개발과 사례’를 통해 양산의 위상 정립은 물론 지역경제와 결부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소개했다.

김 이사는 ▶출판을 통한 콘텐츠 개발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를 등장시킨 뮤지컬 공연 ▶독립운동과 관련한 합창제와 시낭송 대회 개최 ▶항일독립에 얽힌 통도사 이야기의 드라마나 영화 제작 등을 제안했다. 또한 김일권 양산시장 제안인 경남 최초 만세운동이 일어난 장소인 ‘신평오일장’을 ‘신평독립장’으로 개명한 뒤 이와 관련한 먹거리와 볼거리 등을 개발하고 통도사와 연계한 관광상품을 개발하자는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이사는 “윤현진 선생을 시작으로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지고, 최근에는 양산항일독립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듯 우리가 찾아서 입증하면 독립운동의 성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독립운동가 선양사업 필요

주제 발표에 이어 신용철 관장이 주제별 토론과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신 관장은 “현재 공식적으로 경남 최초 만세운동은 3월 9일 ‘함안 칠북 연계장터 만세운동’으로 알려져 있어 신평 만세운동이 발생한 정확한 날짜에 대한 확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평 만세운동 날짜는 최근 나무꾼으로 위장해 지게에 불을 질러 사람을 모았다는 성파 스님 증언과 기존 김달우 씨가 증언한 줄다리기 발언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등 앞으로 여러 가지 현창사업에 매우 중요하므로 정확한 날짜에 대한 확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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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관장은 향후 과제에 대해 신평 만세운동 기념비 건립과 통도오절(김구하ㆍ양대응ㆍ오택언ㆍ조병구ㆍ김말복)에 대한 두상비를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신평 만세운동과 관련해 유공이 확인된 인물은 오택언, 양만우, 김상문, 김진오, 박민오, 박세문, 신구담, 신화수, 이기주 등 다수가 있으나 서훈을 받은 사람은 오택언(애족장, 1990년)과 양만우(대통령 표창, 2010년)뿐이라며 미서훈자에 대한 서훈 추진이 시급하다며, 아울러 윤현진 선생에 대한 서훈 상향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양만우 스님에 대한 부도탑 건립을 승속이 힘을 모아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상북 출신으로 임시정부 내무차장과 국무원을 역임한 이규홍 선생과 만석꾼 김병희ㆍ김교상 부자 의병 등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를 찾아내 역사 속 인물로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일권 양산시장은 서병희, 윤현진, 김철수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상북면을 ‘상북독립면’으로, 경남 최초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하북면을 ‘하북만세면’으로 개명을 추진하는 등 늦었지만 다양한 선양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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