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 가정에 명패를 전달하는 사업이 지역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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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동행정복지센터(동장 박국하)는 지난 15일 독립유공자 박치화(1895~ 1932) 선생 후손 가정을 방문해 명패를 달았다.
박치화 선생은 평북 의주 출신으로 주로 남만주 일대에서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에서 활약했으며, 1931년 12월 중앙집행위원 가운데 한 명으로 선출됐고, 조선혁명군사령부 부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1932년 1월 신빈사건(新賓事件)으로 체포돼 퉁화(通化) 주재 일본영사관으로 끌려가서 악형을 받은 끝에 순국했다.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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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동행정복지센터(동장 조만조)는 지난 17일 독립유공자 추홍순(1894~ 1959) 선생 후손 가정을 방문해 명패를 부착했다.
추홍순 선생은 1919년 3월 하동군에서 만세운동 참가를 시작으로, 민족 대표 33명을 본받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에서 33명으로 구성한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해 일제에 저항했으며, 같은 해 4월 체포돼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1921년부터 이웃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글을 가르치며 애국정신을 고취했으며, 1997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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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물금읍행정복지센터(읍장 박종태)는 독립유공자 허희중 선생, 손시헌 선생, 문갑이 선생의 후손 가정에 명패를 달았다.
허희중(1887~1954) 선생은 1919년 3월 29일 경남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구포시장에서 1000여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문갑이(1909~1983) 선생은 1929년 9월 사천군 삼천포읍에서 비밀 모임인 용산독서회를 조직했으며, 1934년 향리에서 야학을 열어 농민 자제를 교육한 삼천포 농민조합 활동을 펼쳤다.
손시헌(1923~2002) 선생은 1942년 7월 2차대전 때 한인청년학교를 지원병이라는 미명에 따른 강제 입대에 반대하며 항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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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행정복지센터(동장 이상한)는 18일 독립유공자 정진영(1908~1982) 선생 자녀 가정을 방문해 명패를 부착했다.
정진영 선생은 양산에서 출생해 활동한 독립유공자다. 1932년 3월 6일 양산농민조합원 구금에 항의해 조합원들과 함께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항일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징역 10월을 받아 복역했다. 2002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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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동행정복지센터(동장 김철민)는 지난 19일 독립유공자인 김국주 선생 후손 가정에 명패를 부착했다.
김국주 선생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22년 만주 환인현에서 김동삼 등이 조직한 통의부에 가입하고, 1924년에는 통의부 제4중대의 3소대장으로 임명돼 무장 항쟁활동을 펼쳤다. 이후 1925년 간도에서 조직된 정의부 소대장을 맞아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일제에 맞서 무력항쟁을 펼친 애국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