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양산시민신문 |
|
광복과 전쟁 사이 태어났다. 일흔넷 평생을 평범하게 살았다. 아들 셋 가운데 둘은 장가보냈다. 막내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서 독일에서 산다. 올해 여든 나이 남편은 남들한테 내세울 만큼 건강하지 않지만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오다 보니 큰 걱정 없이 여기까지 왔다.
‘봉사’는 일흔이 되던 해 처음 마주했다. 그전에는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소일거리 삼아 시작한 노인일자리 사업이 ‘자원봉사왕’이라는 큰 호칭을 안겨줬다.
이필순(74) 씨는 자신이 자원봉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시작했다고. 양산시노인복지관에서 자신보다 더 연로한 어르신들을 보며 힘닿는 데까지 도와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진 게 많지 않으니 돈으로 남들 돕는 건 어려웠지만, 찾아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짜고짜 복지관 영양사에게 “제가 도울 일이 좀 없을까요?”라고 물었다. 복지관으로선 가뜩이나 손이 부족하던 차에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시작한 자원봉사는 이 씨에게 이제 일상이 됐다. 매달 50시간 이상 봉사한다. 햇수로 어느덧 5년, 누적으로 1천661시간이 넘는다. 힘쓰는 일은 어렵지만 손길이 필요한 일은 뭐든 한다. 커피를 타주기도 하고 배식도 돕는다. 카페 청소에, 어르신 식사를 돕기도 한다.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복지관에서 이 씨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적은 금액이라도 연말 기부도 빼먹지 않는다. 지난 2016년에는 양산시 우수자원봉사자로 뽑혔다. 나아가 지난달 경남도 ‘2019년 자원봉사왕’으로 뽑히는 영광도 누렸다.
“어르신들 모습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제 모습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 것 같네요”
이 씨에게 복지관 어르신들이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남 일 같지가 않다. 이 씨가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다 보면 언젠가 제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웃이 모른 체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도움에도 연신 ‘고맙다’, ‘감사하다’ 인사해주는 ‘친구’들 덕에 그나마 피곤을 잊고 일한다.
이 씨는 언제까지 봉사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내 의지와 관계없다. 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몸은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도 봉사를 빠지지 않는다. 이젠 봉사 활동에 책임감마저 느낀다고.
“누가 봉사왕으로 추천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부끄럽네요. 봉사왕 선정 소식에 정말 얼떨떨했어요. 당연히 많이 놀랐죠. 무엇보다 내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나 싶었습니다. 봉사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복지관 직원들과 영양사님, 주방에서 고생하는 모든 분 덕분입니다. 더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70대 중반 왜소한 체격의 이필순 씨. 그의 작은 몸짓은 봉사가 꼭 거창한 일만은 아니란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이 씨 바람대로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지역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도움의 꽃이 피어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