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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골목길, 그 낡음이 경쟁력’… ‘서리단길’을 아시나요?..
기획/특집

‘골목길, 그 낡음이 경쟁력’… ‘서리단길’을 아시나요?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9/10/08 10:15 수정 2019.10.08 10:15
물금 서부ㆍ동부마을 등 옛 도심 일대
최근 젊은 층 사이 ‘핫 플레이스’ 등극

예스러운 골목길과 잘 어울리는 모습들
음식ㆍ커피전문점 등 하나씩 늘어나면서
물금역 일대 원도심 상권 활성화 기대

“원도심 개성 잃지 않고 천천히 발전하길”

낙후(落後). 기술이나 문화, 생활 따위의 수준이 일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뒤떨어짐. 원도심(原都心). 도시가 형성ㆍ발달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도심지 역할을 한 지역.

현대 사회에서 ‘낙후’는 원도심을 대표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특히 신도시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더 그렇다.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와 비교해 예전 모습의 원도심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물금지역 원도심에서 작은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성공을 확신하긴 이르지만 희망은 있다. 특별하지 않은 골목이기에 더욱 사랑받는 ‘서리단길’ 이야기다.


ⓒ 양산시민신문


물금읍 인구는 지난달 기준 11만7천855명이다. 밀양시 전체 인구(10만8천677명)보다 많다. 읍 단위 마을 인구로는 전국에서 순위를 다툴 정도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를 따라 대형 상권이 지역 곳곳에 생겨났다. 신도시 개발 10여년 만의 성과다.

성장 이면에 남겨진 ‘그늘’은 원도심이다. 물금지역 원도심은 물금역 인근 서부마을과 동부마을, 그리고 가촌까지 길게 이어진다. 원도심은 도로(황산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도시와 구분된다. 눈앞 신도시에는 높은 아파트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낡은 주택의 원도심은 더 초라해 보인다.

다른 지역 원도심과 마찬가지로 물금읍 원도심도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깊은 밤까지 불을 밝히던 물금역 인근 술집들은 간판을 내렸고, 마을 사람들 이외 오가는 발걸음은 찾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물금 원도심에 작은 변화가 시작되는 모습이다. 낡은 집을 개조해 식당을 차리거나 아예 건물을 허물고 현대식 커피전문점을 짓기도 한다. 여전히 많은 상가가 끊어진 손님 발걸음에 힘겨워하지만 새로 들어선 상가를 중심으로 심상찮은(?) 변화 조짐이 보인다.

새롭지 않아 특별한 옛 골목의 상가들
중년에겐 추억, 젊은 층에는 색다름을 선물


젊은 사람들은 이미 이곳에 ‘서리단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서부마을에 서울 경리단길에서 유래한 ‘~리단길’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망리단길과 황리단길, 송리단길까지 수많은 ‘~리단길’에 물금 ‘서리단길’도 조용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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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리단길은 특별할 게 없다. 오래된 건물들과 좁은 골목, 평범한 상점이 전부다. 물론 일부 새로 지은 건물들이 상대적으로 독특한 개성을 뽐내기도 하지만 서리단길을 대표할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서리단길의 변화는 몇몇 작은 상가들에서 비롯하고 있다. 옛날 집을 개ㆍ보수한 식당은 좁고 때론 불편하기까지 하지만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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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단길이라 이름 붙인 사람들은 이곳의 매력을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접어드는 그들에겐 자신들이 자랐던 동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낡은 건물들과 좁은 골목, 한가로이 햇볕을 쬐는 고양이의 모습도 자신의 추억을 현실화해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젊은 사람들에겐 호기심, 신기함 등의 단어로 서리단길을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이른바 ‘힙한’(고유한 개성과 감각이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감성을 강조하며 그들 사이 ‘핫 플레이스’로 서리단길을 소개하고 있다.

서리단길의 흥행(?)을 주도하는 곳은 식당과 커피전문점, 사진관 등이다. 돈가스와 동파육을 전문으로 하는 한 식당은 옛집을 개조해 문을 열었는데 평일에도 대기 인원이 있을 정도다. 현대식 2층 건물의 커피전문점 역시 아기자기한 장식 등으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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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묘한 조화를 뽐내는 사진관, 젊은이들에겐 이름조차 낯선 ‘상회’라는 간판을 내건 상점까지 서리단길에서는 왠지 새롭다. 그래서 돋보인다. 심지어 새로운 주인을 찾는 다방의 낡은 창문은 바쁘게 지나는 사람들 틈에 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다방’이란 잃어버린 이름이 젊은이들에겐 낯섦을, 중년에겐 반가움을 선물하는 모양이다. 이처럼 그냥 낡고 헤진 모든 것들이 서리단길의 개성이 되고 있다.

앞으로 서리단길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분위기를 이어 서울의 유명 거리처럼 수많은 사람이 몰려오게 될지, 아니면 ‘개발’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공간으로 남게 될 지 누구도 점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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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람들은 천천히 변해가는 서리단길 모습에 ‘욕심’이 더해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몰려드는 ‘자본’ 때문에 결국 그곳의 고유 가치들이 망가지는 현장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우리 삶과 함께했던 골목길로, 지금처럼 변하지 않는 듯 변해가는 모습으로 서서히 ‘성장’하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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