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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현 편집국장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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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에프엑스 출신 연기자 설리의 사망 소식이 14일 전해졌다. 본명 최진리, 1994년 3월생, 올해 만 25세다.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다. 그런 그가 세상을 등졌다. 부검 결과 별다른 범죄 혐의점이 없어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된다. 17일 발인식도 끝났지만, 여전히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설리는 양산 중부초등학교 출신이다. 예쁜어린이선발대회에서 ‘왕리본어린이상’을 받으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으며,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5년 SBS 창사 15주년 대하드라마 ‘서동요’에 출연하면서 주목받았다. 당시 갓 입사한 새내기 기자였던 필자는 드라마 출연 이후 본사를 방문했던 어린 설리와 사진을 찍었다. 동글동글한 눈망울이 참 예쁜 어린이였던 기억이 남아 있다.
4년이 지난 2009년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내세운 걸그룹 ‘f(x)’(에프엑스) 멤버로 데뷔하면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티끌만큼 작디작은 인연으로, 연예인에 별 관심이 없던 필자도 설리 소식에는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그동안 많은 연예인의 죽음을 봐왔지만, 설리의 사망 소식은 여느 연예인의 그것보다 더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
설리는 연예계 생활을 하는 동안 지독한 악플에 시달렸다. 누구나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이유로 악플을 지목한다. 악성 루머와 악플로 인해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마다 자성론이 나오기도 하지만, 악플은 대상을 바꿔가며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옥죈다. 설리 사망 이후에도 악플은 그를 추모하는 다른 연예인들에게 옮겨가고 있다.
최근 한 SNS에 연예인 악플 고소를 담당한 변호사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단 한 명의 연예인에 대한 악플을 모아 단순 출력한 분량”이라며 A4지를 모아둔 사진을 올렸다. 그 두께만 성인 손바닥 한 뼘 가까이 되는 엄청난 양이다. 그러면서 “이런 감정의 쓰레기 더미가 매일 온몸에 끼얹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음식 쓰레기 한 번 잘못 밟기만 해도 기분 상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악플 다는 사람은 뭐 이 정도 가지고 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당사자는 수천, 수만 번의 쓰레기 세례를 언제 그칠지 기약도 없이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썼다.
익명성에 숨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들은 화가 나 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단순히 대중에게 알려졌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설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던 그날,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다. 소위 ‘조국 사태’라고 불리는 일련의 정치활동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화’뿐이다. 어느 한쪽 입장을 대변할 생각은 없다. 겉으로는 사건의 본질, 진실을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화만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각종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저 자신들의 유불리만 따져 상대방에게 분노만 쏟아 내고 있다. 누구나 당선될 때 화합과 통합 그리고 대화를 외치지만, 현실은 편 가르기를 통한 분노만 자극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권이다. 어쩌면 악플보다 더한 가짜 뉴스도 버젓이 만들어 유통시킨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다. 발전을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더라도, 관용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02년 번역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틱낫한 스님의 ‘화’(anger)에 이런 구절이 있다.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화는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게 한다. 따라서 화를 다스릴 때 우리는 미움, 시기, 절망과 같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진다.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있는 모든 매듭을 풀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2019년, 대한민국은 화가 나 있다. 스스로 불행을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