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수십년을 살아온 자신들에게 10년 전 누군가가 “함께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고민하지 않고 “가고 싶다”고 답했다. 그들은 그렇게 평생의 터전을 뒤로하고 낯선 타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인에서 한국인으로,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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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사할린 동포 80명(40쌍)이 양산지역으로 영주귀국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들은 대한적십자사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에 따라 2009년 10월 23일 상북면 LH 임대아파트에 뿌리를 내렸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으로 60년 이상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1세대 동포와 그들의 자식인 2세대 동포들이다. 당시 4만여명에 달하던 동포 가운데 극소수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고국’을 찾았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 사는 방식조차 낯선 곳에서 10년을 보냈다. 제 식구처럼 환영해주고 제 일처럼 돌봐주는 사람들 덕분에 정착하는 데 힘이 들지는 않았다. 완벽하지 않은 한국어로 소통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외로움과 경제력이었다. 평생의 터전을 등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던 그들. 그리움에 사무치던 고국이고 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어머니의 나라’에 왔지만 그들에겐 또 다른 이별이기도 했다. 러시아에서의 삶과 작별해야 했고, 특히 형제와 자녀 등 ‘가족’을 두고 떠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영주귀국할 당시 조건이 ‘부부’ 관계의 두 사람이어야 했다. 장애인 자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함께 올 수 없었다. 그들은 친척과 자녀 등 가족을 러시아에 남겨놓고 오직 ‘고국’, ‘모국’이란 이유로 한국행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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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대한적십자사 회원들 환영 속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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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위해 선택한 가족과의 이별
4년 넘도록 손주 얼굴 못 본 사람도
물론 가족과 영영 이별한 건 아니다. 가족들이 한국으로 오기도 하고 그들이 가족을 보기 위해 러시아로 가기도 한다. 자주 가는 경우 1년에 한 차례 정도는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고 한다. 김무자(71) 씨도 지난달 러시아를 다녀왔다. 김 씨는 “러시아에서 사는 자녀들이 비행기 표를 끊어줬다”며 “자식들이 오기에는 식구가 많아서 1년에 한 번 정도 내가 러시아로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김 씨처럼 러시아를 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문제다. 때론 건강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최영희(72) 씨는 가족을 못 본 지 4년이 넘었다. 4년 전 큰 수술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갈 수 없으니 가족들이 한국으로 와 준다면 좋겠지만 러시아에 남은 자녀들도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렇게 4년 넘게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영상통화로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지만 최 씨 얼굴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외로움은 더 크다. 영주귀국 당시 함께 왔던 80명 가운데 69명만 남았다.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고, 몇몇은 하늘나라로 갔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러시아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동포 수는 줄어든다. 좋은 친구였고, 새로운 가족이었던 이들과 다시 이별하고 있는 것이다.
귀국 사할린 동포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기존 한국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파트 경로당에만 가도 동년배 어르신들이 많지만 60년 이상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서로 어울리기란 쉽지 않다. 귀국 10년 동안 언어도 늘었고 생활양식도 많이 ‘한국화’했지만 뼛속 깊이 남은 사고방식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현재 사할린 동포들은 경로당 대신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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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경제 상황에 버스비조차 아까워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 제정 시급
또 하나의 문제는 주머니 사정이다. 이미 환갑마저 훌쩍 지난 나이에 언어도 서툴고 문화조차 익숙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정부 배려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돼 매달 받는 지원금으로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를 쓰고 있지만 빠듯한 삶은 여전하다.
몸을 쓰는 일이라도 하고 싶지만 노쇠한 몸을 써 주는 곳이 없다. 무엇보다 일을 통해 적은 돈이라도 벌게 되면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자리 찾기가 더더욱 꺼려진다.
박장녀(81) 양산시사할린동포회장은 “기초생활수급비를 포함해 부부 두 사람에게 주는 지원금이 100만원 정도인데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 병원비를 쓰고 나면 생활하기엔 정말 빠듯한 금액”이라며 “특히 남편이나 아내가 죽고 혼자 사는 경우 지원금이 절반뿐이라 생활이 정말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할린 동포들은 1년에 8만원을 지원해주는 문화누리카드를 교통비로 쓸 수 있게만 해줘도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참고로 문화누리카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문화 소외계층에게 연간 8만원을 지원해 각종 문화ㆍ예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사할린 동포들에겐 영화나 공연보다 당장 아쉬운 게 교통비다.
박 회장은 “시내에 살면 지하철이라도 공짜로 타지만 우린 지하철이 없어 맨날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며 “그렇게 나가는 버스비가 우리에겐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사할린 동포들의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발의돼 있다. 특별법에는 ▶영주귀국 대상 확대 ▶비영주귀국 잔류 1세대 국적 판정과 2세 국적회복 절차 간소화 ▶차세대 한인을 위한 교육과 문화 지원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은 2009년 최초 발의 후 10년째 국회에 잠들어 있다.
버스 요금조차 부담된다는 사할린 동포들이지만 지역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은 잊지 않고 있다. 귀국 첫해부터 지금까지 각종 생활 물품 지원부터 김장김치까지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아온 그들이다. 외로움이 깊은 만큼 그런 온정의 손길이 더욱더 고맙게 느껴진다. 이런 마음에 보답하고자 어려운 형편에도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전달한다. 누군가에겐 수 십 만원이란 돈이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사할린 동포들에겐 ‘버스비’를 아껴가며 모은 소중한 돈이다.
“10년이잖아요. 때론 두고 온 가족이 그립고, 그래서 많이 외로울 때도 있죠. 하지만 이젠 우리도 한국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러시아에 살면서 한국을 얼마나 그리워했는데요. 한국 생활 10년 동안 이웃들이 우리에게 보내준 사랑 정말 고마웠어요. 비록 나이 들어 힘없고, 가난하지만 우리도 받은 사랑을 조금씩 되돌려 줄 겁니다. 그렇게 양산에서 죽을 때까지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