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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뭣들 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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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들 하고 계시나요?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9/12/03 14:00 수정 2019.12.04 14:00

 
↑↑ 홍성현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2016년 4월 경기도 용인의 한 어린이집 앞. 해인이는 하원 버스를 타려고 경사진 도로가에 서 있었다. 그런데 주차 기어를 제대로 놓지 않은 SUV가 굴러 내려오면서 그대로 해인이를 덮쳤다. 다른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가 차에서 내린 뒤 순식간에 벌이진 일이었다. 당시 어린이집 교사들은 외상 여부만 확인했을 뿐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특히, 담임교사는 ‘응급실로 가고 있다. 외상은 없고 놀란 거 같다’는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구급차 CCTV를 보면 해인이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여러 차례 경련을 일으켰고, 이송 중 사망했다. 

표창원 의원(민주)은 ‘해인이법’을 발의했다. 13세 미만 어린이가 질병, 사고 또는 재해로 인해 응급환자가 된 경우 즉시 응급의료기관 등에 신고하고, 이송과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2016년 4월 희귀난치성질환인 웨스트증후군을 앓던 한음이가 특수학교 통학버스 안에서 통학 보조교사의 방치로 숨을 거뒀다. 차량을 탑승하고 얼마 뒤 한음이는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뜨렸다. 스스로 고개를 들 수 없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빨리 조처하지 않으면 기도가 막혀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보조교사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한음이는 68일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결국 부모 곁을 떠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권칠승 의원(민주)이 통학버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음이법‘을 발의했다.

2017년 10월 하준이(당시 5세)는 연휴를 맞아 놀이공원을 찾았다. 그런데 하준이는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갑자기 굴러온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그 차량은 운전자도 없이 변속기를 드라이브(D) 모드인 상태로 사이드 브레이크도 잠그지 않은 채 주차돼 있었다. 차 범퍼에 머리를 받힌 하준이는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1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이후 민홍철 의원(민주)과 이용호 의원(무소속)은 ‘하준이법’을 각각 발의했다. 주차할 때 운전자의 안전조치를 의무화와 경사구역 주차 안내 표지판 설치, 주차장 고임목 설치 등 내용을 담았다.

지난 5월 인천 송도에 있는 한 사설 축구클럽에 다니던 태호와 유찬이는 통학차량 운전자가 과속과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내면서 세상을 떠났다. 부모들은 축구클럽 차량을 통학차량으로 알고 있었지만, 법이 규정하는 어린이 통학버스가 아니었다. 때문에 보호자 탑승이나 기본적인 안전조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정미 의원(정의)은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대상에 체육교습 업종을 포함하고 운전자와 운영자 의무를 강화하는 한편 통학버스 교통법규 위반 정보를 해당 시설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태호ㆍ유찬이법’을 발의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뒀던 지난 9월 충남 아산, 민식이는 학교 정문 앞 건널목을 건너다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해당 도로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었지만, 신호등이나 CCTV 등 어린이를 보호할 어떤 시설도 없었다. 운전자는 시속 30km라는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았다.

강훈식 의원(민주)은 스쿨존 내 무인 과속방지장비와 신호기, 과속방지턱, 속도제한 표지판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민식이법’을 발의했다.

해인이, 한음이, 하준이, 태호, 유찬이, 민식이…. 교통안전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 이름을 딴 어린이 교통안전법안들은 발의 이후 짧게는 3달, 길게는 3년 이상 계류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대했으나,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이어지면서 어린이 교통안전법안을 비롯한 각종 민생 법안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렇게 쓰라고 지어준 이름이 아닐진대, 아이들 이름 뒤에 ‘법’을 붙여야만 하는 부모들 심정을 헤아려야 할 국회가 오히려 그들을 협상 도구로 사용하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망한다. “도대체 뭣들 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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