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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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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명품을 만드는 장인은 실 한 땀, 한 땀에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고 한다. 뒤늦게 배움의 맛을 알아가는 우리나라 70대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손끝에 힘을 주고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글을 써 내려 간다.
지난달 17일 서창동행정복지센터 한쪽에 마련된 ‘찾아가는 한글교실’ 풍경이다. 교실 안은 60대 어린(?) 학생부터 80대 어른(?)까지 ‘뽀글머리’ 어르신들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조지현 강사가 불러주는 글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연필을 꼭 쥔 손으로 하얀 공책 위에 한글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정성껏 새긴다.
‘6학년 반’ 어르신들이라 이제 웬만큼 글은 다 알지만 ‘섭리’, ‘삶의’ 등 발음과 표기가 다른 단어들은 헷갈리기도 한다. ‘쪄서’는 ‘쩌’와 ‘쪄’ 가운데 어떤 게 맞는 건지 헷갈리고 묻혀는 ‘뭇’과 ‘묻’, ‘뭍’ 등 같은 발음 소리가 너무나 많다. 그래도 배움을 통해 새로운 걸 알아가는 재미는 매번 수업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든다.
5년째 배우고 있는 김판선(63) 어르신은 딸의 추천으로 한글교실과 인연을 맺게 됐다. 5년 동안 배운 한글 실력으로 이제 일기를 쓰고, 자기 소개에 시를 짓기도 한다.
김 어르신은 “살림하고, 아픈 남편 뒷바라지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글 배우는 게 정말 재미있어서 수업에 빠진 적은 없다”며 “끌을 몰랐다가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처럼 글을 제 때 배우지 못한 많은 노인에게 겁먹지 말고 도전하라고 전해주고 싶다”며 “부디 중학교 과정까지 한글교실이 계속 이어져서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지현 한글교실 강사는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다며 “이 정도 연세면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을 텐데 병원에 갔다가도 꼭 수업에는 나오신다”고 말했다. 조 강사는 “과제 역시 빼먹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예전에 가난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글을 배우지 못한 사연들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강사는 “한글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한글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서로 배우고 알려주는 과정이 어르신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는 것 같다”며 “이웃에 한글교실을 추천할 분들이 계신다면 꼭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산시 찾아가는 한글교실은 지난 2010년부터 시작해 올해 10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해에는 24개 교실이 문을 열어 293명이 초등 과정 한글 익히기에 열중했다. 수강생 요구에 따라 중등 과정 시험반을 운영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중등 과정 학년인정반을 편성해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시민 열망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