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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현 편집국장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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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초에 활약했던 설인귀(薛仁貴, 614~683년)라는 장수가 있다. 설인귀는 몰락한 장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설궤가 수나라에서 벼슬을 지냈지만, 일찍 죽는 바람에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았다. 그러다 아내의 요구로 군에 지원해 당태종 이세민의 요동정벌군에 참전한다. 이후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서 훗날 영웅 반열에 오른다. 우리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고구려 멸망에 직접 관여한 인물이다.
설인귀가 이름을 알린 전투가 바로 ‘주필산 전투’다. 영화 ‘안시성’에서 초반 대규모 전투 장면이 나오는데, 그 전투가 바로 주필산 전투다. 여기서 고구려군이 대패한다. 안시성을 구원하러 온 15만 병력(중국측 기록 20~25만명)이 그야말로 녹아 없어진다. 이때 설인귀가 하얀 옷을 입고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큰 공을 세운다. 하급 무관이었던 설인귀는 당태종의 눈에 띄려고 일부러 흰 옷을 입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설인귀의 활약은 높은 언덕에서 전장을 보고 있던 당태종 눈에 들었고, 전투가 끝난 뒤 당태종은 설인귀를 불러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쁜 이유는 전투에서 승리해서가 아니라 난세에 영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후 설인귀는 승승장구하면서 당태종이 가장 신뢰하는 장수로, 당나라 최정예를 이끄는 장수로 성장한다.
여기서 당태종의 말 한마디에 주목한다. 설인귀가 가진 뛰어난 능력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꿰뚫어 보는 당태종의 안목도 중요하지만, 설인귀를 당대 최고 명장으로 만든 것은 당태종의 말 한마디였다고 생각한다.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장수를 불러 단순한 논공행상을 했다면, 단지 능력 있는 장수로 남았겠지만, 황제가 한 ‘난세에 영웅’이라는 한마디로 인해 설인귀는 그에 걸맞은 활약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아도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우리는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새해 첫날, 서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덕담(德談)을 주고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반가워할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덕담을 가장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독담(毒談)이 수두룩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설 명절 가족이나 친인척들에게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로 ‘앞으로 계획이 뭐니?’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취업은 언제쯤 할 거니?’와 ‘나 때는 말이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어서 결혼, 출산해야지’, ‘애인은 있니?’, ‘너희 학교(회사) 전망은 어떠니?’가 뒤를 이었다. 또한 ‘누구 집 아무개는…’ 등 다른 집과 비교 혹은 자랑, ‘돈은 좀 모았니?’, ‘살이 너무 쩠구나(말랐구나)’, ‘연봉은 얼마니?’ 등도 듣고 싶지 않은 말로 꼽혔다. 말을 꺼낸 의도는 덕담이었겠지만, 듣는 입장에서 아프고 쓰리다면 덕담이 아니다. 덕담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긍정적인 기운이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을 생각한다면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진정한 덕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주고받는 덕담이다. 사람을 만날 때면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그의 저서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해 인사를 드려야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은 어느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 그렇다면 인사말을 이렇게 고쳐 해야겠네. ‘새해에는 복을 많이 지으십시오!’” 복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만들자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의 정초 덕담도 원래는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니라 ‘복 많이 지으세요’였다고 한다.
양산시민신문 모든 임직원을 대신해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 독자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