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우리의 안녕한 밤을 위해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
사람

우리의 안녕한 밤을 위해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20/02/04 09:31 수정 2020.02.04 09:31
∎ 지역 치안 1번지 덕계파출소
경찰관 23명 3개 조로 주야 2교대 근무
사건ㆍ사고부터 교통, 안전, 재해까지…
1997년부터 23년째 치안 최일선 담당

경찰 치안 서비스 가운데 가장 주민과 밀접
“힘들지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보람”

밤 9시. 어둠이 완전히 내린 시각. 취기 가득한 사람들 목소리가 상가 곳곳에서 피어날 무렵 조심스레 파출소 문을 열었다.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기자에게도 파출소 문턱은 왠지 넘어서기 힘든 곳이다. 심호흡 후 “실례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들어선 덕계파출소. 정경태 팀장(경위)과 김재일 주임(경위)이 “무슨 일이십니까”라며 기자를 맞았다. 나머지 경찰관들은 순찰 중이었다. 경찰서를 통해 사전에 약속된 취재라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두 고참(?) 경찰관은 환한 웃음으로 맞았다.

ⓒ 양산시민신문


파출소 내부는 다른 파출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체 공간은 대략 스무평(66㎡) 남짓 돼 보였다. 소장 집무실과 회의공간을 빼고 나면 실제 근무 공간은 더욱더 좁았다. 집기나 시설 역시 전반적으로 좀 낡아 보였다. 1997년 지어져 23년째 같은 위치에서 주민 치안 일선을 지켜온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근무는 3조 2교대로 한다. 1조(팀)는 이상율 팀장(경위)과 최민영 경위, 김효욱 경장, 이명재ㆍ심영빈ㆍ김호현ㆍ차지현 순경이 함께 일한다. 2조는 정경태 팀장(경위)과 김재일 주임(경위), 김갑진 경장, 정영호ㆍ손유성ㆍ정재영ㆍ김형규 순경이다. 3조는 장성구 팀장(경위)과 이동희 주임(경위), 이광호 경장, 서지훈ㆍ김규성ㆍ변혜미ㆍ김재홍 순경이다.

근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주간, 오후 6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야간이다. 3개 조가 주ㆍ야 교대로 근무하는 것이다. 유한선 파출소장(경감)과 강아름 관리반원(경장)을 포함해 전체 인원은 23명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2조가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김재일 경위 안내로 정경태 팀장과 함께 파출소 안쪽 회의실에서 먼저 이야기를 나눴다.

정 팀장을 통해 들은 파출소의 일상은 기자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된 임무는 순찰과 신고 출동이다. 2대의 순찰차로 8개 탄력순찰지점을 중심으로 치안 현장을 살핀다. 탄력순찰지점은 다른 장소에 비해 순찰 필요성이 높은 곳으로 해마다 주민 의견을 받아 조정한다. 2~3시간 단위 진행하는 순찰과 함께 언제 접수될지 모르는 신고 처리도 당연히 파출소 경찰관들의 몫이다.

정 팀장과 대화를 나눈 30여분 동안에도 여러 차례 무전이 울렸다. 방금 순찰을 마친 경찰관들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다시 순찰차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신고로 출동하는 횟수가 야간에만 하루 15건 이상이라고 한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가장 많고, 요즘은 가정폭력 신고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날씨가 추운 겨울은 신고 출동이 적은 편이라고.

음주단속 지원도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최근에는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속이 늘었다. 지난해 덕계파출소에서 적발한 음주운전이 약 150건에 이른다.

야간 근무자들은 근무시간 14시간 30분 가운데 3시간을 쉴 수 있다. 시간은 근무자가 편한 대로 조정하면 된다. 다만, 쉬는 시간에도 출동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복장은 갖춰야 한다. 말이 ‘쉬는 시간’이지 사실상 출동대기다.

신고 가운데 다수는 현장에서 잘 정리되지만 폭력 등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때는 대상자들을 파출소로 데려와 조사한다. 조사 내용은 다음날 본청(경찰서) 담당 부서로 전달한다.

정 팀장은 “덕계동은 최근 외부에서 이사도 많이 왔지만 그래도 아직 ‘토박이’가 많은 곳이라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민끼리 아는 사이다 보니 그나마 일반적인 다툼(출동)은 적은 편이다. 대신, 지역 내 정신병원이 있어 알코올 중독자 등 병원 환자들이 가끔 사고를 일으켜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한다. 실제 김갑진 경장과 김형규 순경은 “정신병원 환자들 때문에 긴장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저도 덕계파출소 담당이다. 대통령 사저는 파출소 근무자들과 별개로 담당 경찰을 두고 있다. 아직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크고 작은 집회 등이 이어지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곳이 아니다.

ⓒ 양산시민신문


파출소는 경찰 치안 가운데 주민과 가장 밀접한 곳이다. 생활 속 모든 사건ㆍ사고 출동은 경찰이 1번이다. 폭력ㆍ살인과 같은 형사 사고는 물론, 교통ㆍ안전, 자연재해까지 모든 ‘사고’는 경찰이 출동한다. 심지어 가로수나 전신주가 넘어져도 출동이다.

정 팀장은 가끔이지만 이런 경우가 발생할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말했다.

“밤늦게 도로 위에 큰 나무가 쓰러진 적 있는데, 그 나무는 우리가 처리할 방법이 없어요. 양산시 담당 부서에서 크레인을 부르거나 해서 처리해야 하는데 새벽이다 보니 바로 처리가 안 되는 겁니다. 어떡하겠어요? 우리가 밤새도록 주변 도로를 통제해야 할 판이죠. 결국 다니던 차량 운전자들과 함께 직접 나무를 밀어서 치웠지요. 만약 그렇게 못 했다면 우리 직원 몇몇이 날이 새도록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겠죠. 결과적으로 그만큼 치안 공백이 생겼을 겁니다”

힘든 일상이지만 보람은 있다. 경찰 9개월 차인 정재영 순경은 “얼마 전 출동 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을 만났다. 견디기 힘들 그분이 마음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는데, 그분이 다음에 파출소에 오셨다가 저를 알아보시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가 정말 감동이었고,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힘든 업무 때문일까?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각별하다. 김재일 경위는 “우리 젊은 직원들 사명감이 정말 높다. 우리 때와 다르게 경찰학교에서 많은 실습을 거친 다음 임용이 되기 때문인지 현장 적응능력도 매우 좋다. 어떤 순간을 직면해도 문제없이 일을 처리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찰 5개월 차 막내 김형규 순경은 “이곳이 첫 근무지라 애정이 더 많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감사한 데 팀원들 덕분에 정말 만족스럽게 근무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 주민들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치안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믿고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아내가 내달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김갑진 경장은 경찰 3년 동안 파출소만 근무했다. 김 경장은 “사실 평일에도 시간을 낼 수 있는 파출소 근무가 좋다.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에도 솔직히 내근보단 파출소 근무가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손유성 순경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외근이 좋아 파출소 근무가 마음에 든다는 그는 “출동을 나가면 선배들이 잘 정리해줘서 우린 뒤에서 보조만 하는 정도인데, 선배들을 보면서 일 잘하는 경찰, 후배들에게 잘하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파출소 생활을 경찰이 되기 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먼저 배웠다(?)는 정영호 순경은 “환상만으로 파출소 근무를 하는 건 아니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과 아주 다르진 않은 것 같다”며 “가장 주민과 가까운 곳에서, 좋은 팀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 파출소 근무가 편하고 좋기만 할 리 만무하다. “여직원들이 주취자를 상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중 2짜리 딸이 떠올라 솔직히 안타까운 순간도 많다”는 김재일 경위 말처럼 치안의 가장 밑바닥은 결코 ‘꽃길’일 수 없다. 김 경위가 “아주 가벼운 출동이라 하더라도 함께 출동해 서로를 돕고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어느 순간 위험과 직면할지 모르는 게 파출소 업무이기 때문이다.

늘 현장에 출동한 직원들 걱정에 무전기에서 귀를 떼지 못하는 정경태 팀장, 일 못 한다고 구박하면서도 막상 인터뷰 내내 후배들 자랑을 아끼지 않던 김재일 경위, 인터뷰 도중 신고가 접수되자 망설임 없이 순찰차에 몸을 싣던 김갑진 경장, 38세 나이로 늦깎이 경찰이 된 막내 김형규 순경, 다큐멘터리를 통해 배웠지만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일하는 정영호 순경, 고맙다는 시민 말 한마디에 경찰이 된 보람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됐다는 정재영 순경, 일 잘하는 경찰, 후배한테 좋은 경찰이 되고 싶다는 손유성 순경을 비롯해도 덕계파출소를 지키는 23명의 경찰관, 나아가 12만 대한민국 모든 경찰관 덕분에 우리의 낮과 밤은 오늘도 안녕하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