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pick up)’과 ‘조깅(jogging)’을 합친 말이다. 말 그대로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위다.
플로깅은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사람들은 커다란 봉투를 들고 거리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일종의 ‘놀이’처럼 여겼다고 한다. 쓰레기를 최대한 많이 주우면서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는 게 핵심이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플로깅 후 SNS 인증샷은 필수다.
플로깅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문화다. 일부 지역에서 동호회까지 만들어 생활 속 환경운동 형태로 진화하고 있지만, 아직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런 플로깅을 양산에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냥 혼자 플로깅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신분이지만 사실상 ‘백수’다. 한때는 ‘의원님’으로 불렸지만,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해 지금은 전직 정치인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제6대 양산시의원을 역임한 차예경 전 의원 이야기다. 차 전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직후 플로깅을 시작했다. 비록 떨어졌지만,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서다. 그냥 ‘지지해주셔서 고맙습니다’고 하는 것보단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게 플로깅이다. 언제까지 하겠다는 기약도 없었다. 그냥 달리기 시작했고, 줍기 시작했다. 벌써 만 2년이다.
↑↑ 차예경 전 양산시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 낙선 후부터 플로깅을 시작했다. 그는 아침마다 집 근처를 달리며 쓰레기를 줍는다. |
ⓒ 양산시민신문 |
❚ 플로깅은 언제부터 했나?
2018년 7월 1일부터로 기억한다. 지방선거 낙선 후 곧바로 시작했다.
❚ 왜 플로깅을 선택했나? 낙선의 아쉬움 달래기 위해서인가?
(웃음) 아니다.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와 적지 않은 표를 받았다. 솔직히 누가 지지했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감사 인사 대신 선택한 게 플로깅이다.
❚ 플로깅을 어떻게 알았나?
플로깅을 먼저 알고 시작한 건 아니다. 의회에 있을 때 당시 청원경찰께서 ‘선거 때 인사 대신 쓰레기를 주워 보라’고 조언하셨다. 사실 선거 때 인사를 안 할 수는 없어 실천을 못 했는데 선거를 끝내고 나니 그분 말씀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지지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쓰레기 줍는 것으로 표현하면 되겠다 싶었다. 다만, 쓰레기를 어떻게 주워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때 인터넷에서 플로깅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걸 해보자고 생각했다. 운동하면서 고마움도 전하고, 쓰레기까지 주울 수 있으니까 일석삼조였다.
❚ 플러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
달리기하러 가면서 쓰레기 담을 봉투를 두 개 정도 준비한다. 뛰다가 쓰레기가 보이면 주워 담는다. 그게 전부다. 가끔 쓰레기가 많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뛸 때는 아예 종량제 봉투를 들고 가서 쓰레기가 가득 차면 수거 장소에 두고 온다.
❚ 매일 하나?
매일은 아니다. 일주일에 5~6일 정도 달린다. 운동이란 게 중독성이 좀 있지 않나. 나도 약간은 중독된 것 같다. 멀리 다른 지방에 가지 않는 이상 플로깅을 한다. 술을 마신 다음 날 몸 상태가 나빠도 나간다. 오히려 그때 달리면 더 좋기도 하고.
↑↑ 차예경 전 양산시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 낙선 후부터 플로깅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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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은 아니지만 정치인이다. 운동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날 텐데 부담은 없나?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있다. 적당한 시기에 끊어야 하는데…. (웃음) 매번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를 뛰니까 항상 만나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제는 내가 안 나가면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정치인이 쓰레기 치우는 걸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다. 나한테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충고하는 분들도 계시고. 근데 이게 손익계산 따지면서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 주변 반응은 어떤가?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라고 하더라. 나도 사실 그랬다. 그런데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더 나가게 된다. 아침에 못 나가면 오후에라도 나간다. 쓰레기를 안 치우면 이제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 같다. 우리 애도 내가 안 나간 날이면 전화를 한다. “엄마 오늘 청소(플로깅) 안 했지”라고. 내가 달리는 곳 주변 어르신들은 내가 지나가면 텃밭에서 키우던 상추를 주기도 한다.
❚ 플로깅의 좋은 점은 뭔가?
여기서 에너지를 얻는다. 아침에 혼자 생각할 시간도 생기고. 해 뜰 때 나가는 기분이 좋더라. 사람이 일에 치이면서 힘들기 마련인데, 아침에 운동하면서 나는 힘을 얻는다. 특히, 플로깅 하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 서로 좋은 기운을 넣어주는 게 좋다. 그런데 쓰레기를 줍기 바빠서 운동은 별로 안 된다. 물론, 이건 내가 반성할 부분인 것 같다.
❚ 매일 치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쓰레기도 좀 줄어들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쓰레기는 그대로다. 가끔 쓰레기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도 경각심을 좀 가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같은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그 자리에 가면 담배꽁초와 맥주 캔 등이 무수하다. 요즘은 마스크, 물티슈도 많다. 일회용 종이컵도 제법 있고. 담배꽁초가 가장 많은데, 줍기도 힘들다. 그래서 담배꽁초는 매일 주울 수도 없다. 요즘은 3일에 한 번 정도 (담배꽁초를) 치우고 있다. 너무 힘들어서 요즘은 담배를 자주 피우는 자리에 깡통을 갖다 놓을까 고민도 하고 있다.
❚ 쓰레기통을 가져다 두면 거기에 불필요한(?) 쓰레기도 갖다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공공기관에서도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기도 하는데….
사실은 주운 쓰레기를 들고 다니면 집에서 쓰레기를 가져와서 버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다. 한 번은 쓰레기 내용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양산천 산책로 인근에 쓰레기 수거장도 없애버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의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쓰레기는 발생시킨 사람이 가져가서 집에서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솔직히 우리 의식이 아직 한참 부족한 것 같다.
↑↑ 10여분 남짓 달리며 주운 쓰레기양이 놀라울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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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줍는 것 중에도 특별히 힘든 게 있다면?
앞서 잠깐 얘기했지만, 기본적으로 담배꽁초 같은 건 작아서 줍기 힘들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숨어 있는 쓰레기다. 사람 심리가 길거리보다는 보이지 않는 풀숲에 (쓰레기를) 던지게 돼 있다. 쓰레기를 던질 때는 풀이 높이 자라서 안 보였겠지만, 나중에 풀을 깎으면 다 드러난다. 심지에 강변도로는 차를 타고 가다 쓰레기를 마구 던지기도 한다. 그거 처리하는 날은 마대 자루를 준비해서 손수레까지 끌고 나간다.
❚ 마대 자루에 손수레까지 준비하나?
사람 심리가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곳에는 쉽게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쓰레기가 많은 곳에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레기를 마구 버린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치워야 한다.
❚ 하루 플로깅 시간은 얼마 정도인가?
1시간 40분 정도 하는데, 보통 금오교에서 양산역까지 간다. 더 내키는 날은 종합운동장까지 간다. 아까 말한 마대 자루 들고 나가는 날은 운동은 포기하고 동면 구간에 집중해서 쓰레기를 치운다.
❚ 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사람들이 ‘상처’도 주고, ‘상추’도 준다. (웃음) 그게 솔직히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동시에 치유도 받는 거. 특히, 격려하고 아껴주는 분들에게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다. 쓰레기 중에는 부피가 큰 것을 치우는 게 힘들다.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등은 바람 부는 날 장난 아니다. 버리는 사람들은 행정에서 알아서 치워줄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런 부분도 좀 알아줬으면 한다.
❚ 앞으로 플로깅과 관련해 다른 계획이 있나?
그런 걸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은 그냥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 다만, 조금씩 사람들의 변화가 눈에 보인다. 개인적으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무슨 릴레이(챌린지)’처럼 사회운동으로 확산시켜볼까 생각도 해봤다. 다만, 내가 정치인이다 보니 일단 오해의 소지가 많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 있나?
욕하고 싶진 않다. 비교하면 좀 그렇지만, 우리 부모 세대는 우리에게 쓰레기가 발생하면 자기 호주머니에 넣으라고 가르치셨던 것 같은데, 우리 자식만 봐도 버리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서 매번 혼내지만, 결국 우리가 교육을 잘못한 것이다. 담배꽁초도 또한 나와 가까운 흡연자들도 대부분 그냥 버린다. 그런 상황인데 누굴 욕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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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예경 전 양산시의원이 플로깅을 하면서 만난 일출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고 손꼽은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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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나?
하천은 건설과, 도로 주변은 도로과, 공원은 공원과가 관리한다. 관리ㆍ감독 부서가 모두 다르다. 문제를 지적하면 서로 ‘핑퐁’(떠넘기기)을 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 정치인이다. 다음 선거에 다시 도전할 텐데 만약 당선하면 플로깅은 끝인가?
당선하더라도 지금보다 운동 시간은 짧아질지 모르겠지만, 플로깅은 계속할 생각이다. 이제 나 자신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 이미 몸에 익숙해진 운동이고, 정신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에게 보여주자고 시작한 게 아니니까 내 의지대로 할 생각이다.
❚ 끝으로 시민에게 플로깅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건 그냥 개인 운동이다. 정치인이란 이유로 이런 일에 어떤 의도가 있네, 없네 하실 필요 없다. 제 모습이 보기 싫다면 그냥 신경 안 쓰시면 된다.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으면 본인은 그걸 하시면 된다. 서로가 하는 일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지 않나. 혹시 플로깅에 관심이 있으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부담도 없이 그냥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쓰레기도 줍고, 운동도 하고, 무엇보다 아침 일찍 양산천을 달리면 그 풍경에 마음속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가족이 함께하면 아이들에게 교육 효과도 좋다. 이왕 달리는 거라면 가끔 쓰레기 한둘 정도 주워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