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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채무는 해로울까? ④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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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채무는 해로울까? ④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6/03 17:10 수정 2021.06.03 17:10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그런 엉터리 숫자를 국민이 갚아야 하는 정부의 빚이라고 발표하는 기재부든, 호들갑을 떨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언론이든, 의도는 같다. 나랏빚이 늘어나서 위험하니, 정부 지출을 축소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부가 더 많이 지출하더라도 세금을 더 걷으면 재정건전성이 유지될 테지만, 그들이 세금 더 걷어야 한다는 의도를 내비친 적은 없다. 부자와 대기업이 반대할 테니까.

이번 칼럼부터는 ‘정부채무 증가는 경제에 해롭다’는 주장이 가장 흔히 동원하는 근거, 즉 ‘외국인 자본의 이탈’ 혹은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정부가 빚을 많이 지면,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고, 심하면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97~1998년 IMF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려는 전략처럼 보인다. 여기에 동원되는 수사로는 ‘비기축통화국’, ‘국가신용도’, ‘인플레이션과 환율 급등’ 등 다양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비기축통화’의 한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정부채무 증가가 외환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에 따르면, 기축통화를 보유한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정부가 질 수 있는 빚의 한계가 좀 더 크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통화(돈)인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므로, 정부가 빚을 질 여력이 크지 않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은 최근 들어 정부채무 비율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미국, 일본, 유럽 등 기축통화국이 아니라 비기축통화국과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G20 국가들의 정부채무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데도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이들 정부는 우리 정부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재정 지출을 늘렸다는 비판(지난 칼럼 참고)을 염두에 둔 대응이다. 이에 따르면, 기축통화국의 정부채무 비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지만, 비기축통화국 평균 정부채무 비율은 약 50%로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어느 나라 통화가 어떤 이유로 기축통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선진국 정부는 빚을 많이 져도 되지만, 후진국은 그럴 수 없다’. 이를 국민 일반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축통화’란 전문용어를 섞어서 어렵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기축통화를 보유하지 않으면 정부채무 증가가 외환위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기축통화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분명히 하자. 기축통화란 개념은 브레튼우즈 체제(1944~1971년)의 금환본위제에서 유래한다. 1944년 선진 44개국 대표가 ‘브레튼 우즈’라는 미국의 한 휴양지에 모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통화체제를 어떻게 만들지 합의했다. 그 합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금(Gold)에 고정(금 1온스=35 미국 달러)한다. 둘째, 기타 통화들의 가치는 달러화에 고정한다. 즉, 대(對)달러 환율을 고정한다. 셋째, (대미 무역 흑자 등을 통해) 달러화를 보유하게 된 국가가 미국에 이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면, 미국은 즉시 금을 내줘야 한다.

이 국제통화체제의 핵심은 미국 달러화를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국제 경제에서 금이 진짜 돈이고, 금을 얻으려면 달러화가 필요했다. 국제 경제에서 진짜 돈으로 통하는 금은 달러화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달러화를 ‘기축통화’라 불렸다. 하지만 1971년 미국이 달러화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이 체제는 무너졌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기축통화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금이라는 국제 공용 통화는 사라졌고, 그것을 표상하는 통화(기축통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진짜 돈으로서의 금이 사라졌는데, 어떤 근거로 달러화, 유로화, 엔화를 기축통화라 부를 수 있다는 말일까. 더 나아가, 기축통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왜 어떤 나라는 정부채무 비율이 높아도 되고, 어떤 나라는 안 된다는 말일까.

우리나라 통화인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정부채무가 증가하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왜 그런지’를 명확히 설명한 적이 없으니, 필자 또한 답답하기 그지없다.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그림이 있기는 하다. 어쩌면 이들은 세계적 경제위기 시에 소위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는 통화를 기축통화로 간주하고 있을 수 있다. IMF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창궐과 그에 따른 경제적 충격 등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전 세계에 투자돼 있던 자금이 회수돼 주로 달러화로 표시된 자산(대표적으로 미국 국채)으로 몰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달러화의 가치가 상승했다. 여타 통화들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달러화 자산 이외의 자산(예컨대, 우리나라 주식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는 손실을 보게 된다. 국제 투기 자본은 이러한 환율 손실을 피하려고 전 세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 달러화 자산으로 갈아탄다. 이를 ‘안전자산 도피’라 부른다. 세계 경제에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이와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자신의 국내 경제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항상 서럽게 당한다.

그렇다면,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정부채무가 증가하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과 이것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국제 투기 자본의 안전자산 도피 행태는 경제적 충격이 발생한 이후의 일, 즉 결과다. 물론 자국 내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이 갑자기 이탈하면, 국내 경제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 또한 꼭 필요하다. 하지만 안전자산에 속하지 않는 통화를 사용하는 우리나라 정부가 빚을 지면 위험하다고 주장하려면, 정부채무 증가가 자본 도피의 원인임을 설명해야 한다. 이 주장은 정부채무 증가가 어떻게 외국인 자본에 이탈의 동기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대신, 세계 어디선가 어떤 이유로 발생한 경제적 충격이 외국인 자본의 대량 이동을 부추긴다는 점만 부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는 공포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이에 대한 직접적 설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채무 증가가 ‘국가신용도’를 하락시킨다는 주장이 그것인데, 이는 다음 칼럼에서 다룬다)

외국인 자본 이탈을 걱정한다면,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외국인 자본 도피가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는 1997~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다. 전자가 우리 스스로 경제를 잘 관리하지 못해 일어난 내환(內患)이었다면, 후자는 우리는 멀쩡한데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사고를 쳐서 일어난 외환(外患)에 해당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외국인 자본이 이탈하긴 했지만, 대략 1년 이내에 되돌아 왔다. 세계적 사례를 보더라도 유사한 패턴이 발견된다. 다만, 외국인 자본의 도피와 관련해 중요한 사실 하나는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국제 투기 자본의 이동이 자유화된 현대 세계 경제에서 외국인 자본의 이동은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국 경제가 아무리 잘 해도, 자국이 통제할 수 없는 외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본 도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대규모 안전자산 도피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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