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슬기로운 명상생활] 명상의 STAR 공식(2)..
오피니언

[슬기로운 명상생활] 명상의 STAR 공식(2)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2/02/22 09:52 수정 2022.02.22 09:58

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두 번째의 ‘T’는 ‘전환(Transformation)’이다. 명상은 요리조리 따지는 분별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시작된다. 명상 수행을 하는 순간, 부담으로 다가왔던 폭포수와 같은 생각의 물결을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태도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분별과 집착이 멈추면 이제껏 명상 도중에 마음의 장(場)에서 벌어졌던 온갖 번잡하고 혼란한 현상이 수행을 돕는 벗으로 바뀐다. 그래서 옛말에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고 했다. 밉게 보아 뿌리 뽑으려 하면 잡초 아닌 것이 없고, 보기 좋아 돌아보면 꽃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옛사람 말을 하나 더 인용한다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이다. 유홍준 교수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 소개된 구절로 필자가 20년 넘게 좋아하는 문장이다. 원문은 ‘지즉위진애(知則爲眞愛) 애즉위진간(愛則爲眞看) 간즉축지이비도축야(看則畜之而非徒畜也)’로 의미는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쌓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예술적 안목에 대한 글로 주로 소개되지만 필자는 이를 ‘분별을 멈추면 오욕칠정을 간직한 자신의 마음마저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는 놀라운 변형(Transformation)이 일어나고, 그렇게 돼야 내가 우주요, 우주가 곧 나인 무아(無我)의 진아(眞我)가 드러나게 된다’는 수행 측면으로 풀어본다. 이처럼 판단을 멈추면 직관이 살아나고 명상과 일상생활에서의 마음의 상태도 180° 전환된다. 이쯤 되면 진정한 명상의 큰길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다음의 ‘A’는 ‘수용(Acceptance)’이다. 명상하기 위해 앉는 순간 천만 갈래로 생각이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이것을 제어하겠다고 나서는 즉시 어긋나고 만다. 수행을 지도하다 보면 많은 초심자가 명상하려고 앉으면 잡념과 졸음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현상을 느낀다고 하소연하는데, 대개 이 경우는 기존 의식이 정화(淨化)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변화를 그저 주시(注視)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돼야 한다.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나의 것, 나의 생각, 나의 느낌’이라는 에고(Ego, 我相)를 배제하고 제삼자의 객관적 시각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 생각(客)과 나 자신(主)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 마음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과 자신을 같은 대상이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탈동일시, 脫同一視)해야 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100% 수용하면 100% 흘러나간다.

혹자는 ‘그렇다면 아무것이나 전부 수용하고 잡념을 끓이든지, 졸음에 빠지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졸더라도 조는 놈을 지켜보는 ‘그것’과 망상에 빠진 대상을 바라보는 ‘그것’이 또렷하게 남아있다면 초심자 수행으로는 훌륭한 경지다.


명상하는 동안 마음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 중에 걸러 내고 말고 할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멈춤(S)’과 ‘전환(T)’이 잘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가 무르익으면 마음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은 뽑아야 할 잡초가 아니라 길러야 할 약초로 저절로 ‘수용(A)’된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