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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 출신 미서훈 독립운동가 전병한 선생, 독립유공자 포상..
사회

양산 출신 미서훈 독립운동가 전병한 선생,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23/12/18 14:37 수정 2023.12.18 14:37
경남도, 독립운동 관련 구체적인 공적 확인

2009년 열린 양산장터 만세운동 재현 행사 모습. [양산시민신문 자료]

 

경남도가 양산 출신 전병한 선생을 비롯한 경남지역 미서훈 독립운동가에 대한 독립유공자 정부 포상을 신청한다.

경남도는 6월 구성한 독립운동가 발굴 및 서훈 신청 전담조직(TF)에서 388명의 독립운동 관련 행형기록을 찾아냈으며, 이 가운데 당시 신문 기사나 관련 문헌을 통해 구체적인 독립운동 공적이 확인된 독립운동가 24명을 국가보훈부에 포상 신청한다고 14일 밝혔다.

독립운동 관련 행형기록은 독립유공자 포상 필수 거증자료로, 판결문과 형사건부, 수형인명부 등 피의자 형 집행과정 기록물이 해당한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스스로 기록을 숨겨야 했으며, 일제가 독립운동 활동 내용을 지워지거나 축소ㆍ왜곡한 탓에 공적 내용과 거증자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경남도에 따르면 전병한 선생은 양산면 중부동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전병익이다. 병한(秉翰)은 별명이다. 1919년 3월 25일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양산공립보통학교 동기생인 엄주태 등과 함께 양산만세운동 모의에 동참해 1919년 3월 27일 양산읍 장날을 기해 3천여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이튿날 아침 검거돼 부산헌병대에 이관한 후 부산형무소에 수감됐다.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은 뒤 불복해 1919년 5월 28일 상고했으나, 1919년 7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돼 원심대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09년 발간된 양산항일독립운동사에 수록된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엄주태, 전병한 등 9명의 죄목은 ‘조선 독립 만세를 고창해 공공의 안녕질서와 치안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판결문에는 “(엄주태를 비롯한 전병건, 박삼도, 정주봉 등 네 명은) 27일 양산읍내 시장에서 약 3천명의 군중에 대해 조선독립 만세를 고창하고 이에 화창할 것을 선동ㆍ교사해 안덕원, 강재호, 전병한은 이에 화해 함께 조선독립 만세를 고창해 공공의 치안을 방해했다”고 적혀 있다.

한편, 이번 포상 신청에 대해 경남도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친일행적이나 이적행위 등 사유로 포상 신청에서 탈락한 사실이 있었는지를 국가보훈부에 사전 확인한 뒤 대상자를 선정했기 때문에 대부분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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