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체제개편을 둘러싼 지자체들의 주도권 잡기 경쟁이 시작됐다.
특히 양산을 둘러싼 부산ㆍ경남권 일부 지자체들은 행정체제개편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시민 여론을 수렴하고,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등 구체적인 행정체제개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통합 논의가 진행되어 왔던 마산, 창원, 진해, 함안 등 지자체는 마산과 창원을 중심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통합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부산과 김해는 각자의 논리를 앞세우며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양산은 행정체제개편에 대해 아직까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인근 지자체의 행보를 지켜보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양산시민신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행정체제개편을 둘러싸고 일부 지자체의 기선 잡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양산에서도 본격적인 행정체제개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인근 부산ㆍ경남권 지자체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행정체제개편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연구와 여론 수렴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양산은 행정체제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행정체제개편 논의, 어디까지 왔나
행정체제개편 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 이후 '특별시ㆍ광역시ㆍ도-시ㆍ군ㆍ구-읍ㆍ면ㆍ동'의 3계층 구조는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 등으로 인접도시간 생활권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지역 불균형, 비효율성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1994년 김영삼 정부에 와서 이러한 불일치를 조정하기 위해 동일생활권인 시ㆍ군을 도농복합시로 통합하는 행정구역개편을 시행했으며, 1999년 정책기획위원회는 광역시를 폐지하고,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8~10개로 줄이는 개편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새 정부 수립마다 행정체제개편은 주요한 국정과제로 손꼽아 추진해왔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원칙'만 재확인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행정체제개편이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원론적인 합의를 도출하고 오는 10월 정기국회에서 추진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우선 이명박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2 광역경제권 구상'을 발표했고, 뒤이어 2008년 8월 민주당 역시 행정구역개편을 위한 법 제정을 결의했다. 2008년 9월에는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지방행정체제 개편 조기 추진을 합의했고, 현재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이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
현재 논의되고 있는 행정체제개편안 가운데 우선 권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을 살펴보면 광역자치단체인 도와 광역시의 자치구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기초자치단체를 통합해 광역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전국을 4~5개의 광역권으로 나누고 50~60개의 자치단체를 운영하는 단층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자유선진당의 '강소국 연방제' 역시 현재 16개 시ㆍ도를 6~7개로 개편하고, 기초자치단체간의 자율적 통합을 통해 200여개의 자치단체로 우선 통합한 뒤 최종적으로 120~140여개의 자치단체로 점진적으로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편안을 검토해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정부안을 마련해 본격적인 논의에 불을 붙일 생각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개편된 행정체제 아래서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부산ㆍ김해 통합 주도권 경쟁 시작
최근 김해시는 진해 동부권과 부산 강서구를 김해와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부산과 갈등을 빚고 있다.
김해시는 지난 3월 인제대에 의뢰해 '김해시와 인접 자치단체의 행정구역 개편(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해시에 따르면 진해 동부권과 부산 강서지역이 이전부터 하나의 생활ㆍ문화권을 형성해왔으며, 하나의 경제권으로 공동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강서구가 김해시에 통합될 경우 끊겼던 바닷길이 연결돼 통합경제권이 세계적인 해양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김해향토문화연구원장 출신인 김종간 김해시장은 통합 대상 지역간의 역사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통합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김해시의 부산 강서구 통합 추진이 과거지향적인 하향평준화 발상이라며 김해시가 부산경제권과 생활권에 밀접해 오히려 부산 편입이 바람직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연원은 부산시와 인접한 김해, 양산, 진해시는 중심도시인 부산으로부터 통근, 통학인구가 늘어나고 있어 부산 대도시권으로 통합해 체계적인 도시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시는 부산발전연구원과 함께 공동으로 행정구역개편 공동연구진을 구성, 부산발전연구원이 2004년부터 연구해온 통합안에 대해 오는 7월 시민공청회와 설명회를 거쳐 최종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 양산, 한 발 늦은 개편 논의
양산 역시 부산생활권으로 포함되어 있지만 행정구역은 경남에 속해 있어 시민들의 불편이 속출하고 있다. 이밖에도 세무서는 부산, 법원은 울산ㆍ창원 등으로 나뉘어 있어 행정체제개편은 시민들의 편익을 위해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지만 양산시와 지역 정가, 시민 사회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부산지하철 2호선이 양산까지 연결되면서 부산과의 접근성은 더욱 가까워졌다. 또한 하북지역과 웅상지역 일부는 울산 울주군과 깊은 연관을 맺으며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조선 태종 13년인 1414년 양산군으로 구포, 대저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1973년 지금의 부산 동래구과 금정구 등을 포함한 동래군을 흡수ㆍ합병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도농복합시 통합 정책으로 1995년 양산군에서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 동부 5개 읍ㆍ면이 다시 부산시로 편입됐다.
지난 2일 부산과 김해의 신경전이 외부로 확산되자 오근섭 시장은 간부회의를 통해 양산시의 행정체제개편 방향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양산도 뒤늦게 행정체제개편 논의에 뛰어들 태세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오는 10월 정기국회에서 행정체제개편의 큰 줄기를 잡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양산 시민의 이익을 대변해줄 양산시가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 채 '뒷짐'을 지고 있는 듯한 모습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 가운데에는 양산을 밀양, 창녕과 통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문화ㆍ경제ㆍ생활권이 다른 이들 지역과의 통합이 가시화될 경우 신흥발전도시로 양산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일방적인 편입이 아닌 양산의 목소리를 가지고 통합의 주체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행정체제개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