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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제왕을 만드는 사람들
오피니언

제왕을 만드는 사람들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12/19 09:28 수정 2017.12.19 09:28
제왕적 대통령은 부실한 국회 탓
부실한 지방자치가 만든 지역 제왕
시민 감시 없는 지방자치의 한계
내년 지방선거, 새로운 계기돼야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제왕(帝王). 모든 권력을 가진 자를 말한다. 

제왕에게는 반드시 자신에게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흔히 책사라고 부르는 숨은 그림자가 있다. 중국 역사를 보면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 곁에는 한신(韓信)이 있었고, 우리나라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만든 정도전이 대표적인 책사다. 이들은 자신의 주군을 위해 정치철학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현실화해 권력을 잡는 데 기여한다. 민주주의가 정착한 오늘날에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기여한 참모에 대한 뒷이야기가 선거 후 회자되곤 한다. 

 
1년 전 대통령 탄핵 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면서 자주 언론에 등장했던 말이 ‘제왕적 대통령’이란 단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막강한 권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과거 제국시대와 달리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막강한 대통령 권한은 현실에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우리 사회 일반적인 인식이다. 

 
국정농단 사태를 경험한 국민은 대통령이 갖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사사롭게 이용할 경우 어떤 폐단을 불러오는지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리고 그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투표를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따라 정치권에서 논의하고 있는 개헌 문제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왕적 대통령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라는 방법이다. 누군가는 책임총리제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분권형 대통령제,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각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이는 책사도 참모도 아니다. 오히려 헌법으로 규정해놓고 있는 삼권분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측면이 크다. 물론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자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경우 견제할 만한 힘을 갖지 못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대통령 탄핵까지 불러온 국정농단 과정 동안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자부해온 당시 여당은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해야 할 당시 야당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회 기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왕적 대통령 탓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덧씌우는 일이 과연 타당한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드는 것은 과거 제국시대와 달리 책사나 참모가 아니라 권력을 견제하지 않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국민이 위임한 입법부로써 권한을 방치한 채 거수기로 전락한 국회, 선거 동안 국민으로 대접받다 선거가 끝나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일처럼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 모두에게 공동책임이 있다. 


제왕은 지역에도 있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지자체장은 막강한 권한을 지역에서 아무런 견제 없이 누리고 있다. 양산시만 해도 예산 1조원을 운용하는 중견도시로 발돋움했지만 시장을 견제해야 할 의회 역할은 제자리걸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달 초부터 실시하고 있는 정례회는 예산 1조원을 다루는 예산 심의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제6대 양산시의회 마지막 정례회기도 하다. 


4년 전 시장과 시의원을 함께 선출한 양산시민은 시장에게 합리적이고 투명한 예산 집행을, 시의원에게 행여 있을지 모르는 불합리와 불공정을 견제해달라는 바람을 담았다. 그런데 마지막 정례회 회의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예산 심의가 이뤄지는 동안 무슨 바쁜 용무인지 회의장을 오가는 의원들,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공무원만 다그치는 의원들, 지역구 민원 챙기기에 급급한 의원들….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는 온데간데없다. 

 
반복되는 지적에도 굳건하게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회 탓에 늘 ‘지방의회 무용론’이 등장하지만 그때뿐이다. 시민 스스로 지방의회를 감시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기 때문이다. 제왕적 시장을 만드는 의회에, 부실한 의회를 만드는 시민까지. 지방자치제도는 수많은 감시의 눈을 가진 중앙정치권보다 오히려 병들어 있다. 


지난해 겨울 광장을 밝혔던 촛불이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원동력이 됐던 것처럼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건강한 지방자치를 확립하는 새로운 촛불이 지역에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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