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뚜벅이’는 서럽다..
기획/특집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뚜벅이’는 서럽다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355호 입력 2010/11/16 09:40 수정 2010.11.16 09:39
자동차 중심의 문화ㆍ이기주의, 좁은 인도 만드는 ‘한통속’

보행 약자 배려하는 문화, 걷고싶은 도시 만들기 ‘밑거름’




갈 길 먼 보행자의 날, 오늘도 참고 걷는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11일을 ‘제1회 보행자의 날’로 지정했다. 11월 11일, 흔히 ‘빼빼로 데이’라고 불리는 이날을 보행자의 날로 지정한 것은 사람의 두 다리를 상징하는 ‘11’이라는 숫자가 겹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보행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기념일을 지정하고, 법률을 개정하고 있지만 아직 ‘보행권’에 대한 행정과 시민들의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걷는 사람이 없어 인도에 대한 관심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하는 캐캐묵은 논쟁에 불과하다. 쾌적한 보행환경이 더 많은 사람들을 걷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행자의 날을 맞아 되새겨본다. 


 내년 7월 보행권 보장법 시행 불구
 무용지물 ‘애물단지’ 전락 우려


가로등, 가로수, 전압기, 볼라드, 광고판, 진열대…. 인도 위를 걷고 있노라면 수많은 시설물들이 인도 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래서야 “차라리 차만 피하면 되는 차도로 걷는게 편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 하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보행권’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자동차 중심의 도로행정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적 개선에 나선 것이다.

기존 도로교통법에는 인도가 설치되지 않은 이면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행자에게 우선 책임을 묻고 있다. 보행자는 인도가 없는 도로에서 가장자리로 다녀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규정은 보행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자동차 중심의 법 체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보행권 보장법’이 시행되면 이면도로에서도 운전자에게 보행자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인도에 장애물을 설치하거나 보행자가 다칠 수 있는 행위를 하면 형사처벌까지 가능해진다. 또한 보행로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돌출형 간판을 설치하는 등의 행위로 보행자가 다치게 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주어진다.

운전자 역시 보행자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강화된다. 보행자 전용도로에서 인도를 걷는 사람을 위협한 운전자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처분받게 되며, 교통사고 발생 시 운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행환경에 대한 행정과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법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도 위 점령한 각종 시설물
 “차라리 차도로 걷는 게 낫다”


보행환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 위’ 상황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차라리 차도로 걷는 게 낫다”라는 말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자동차 중심의 행정은 인도를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가로수 정책이다.

가로수는 보행환경을 쾌적하게 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하지만 오히려 잘못된 가로수 정책은 보행자를 인도 밖으로 내몰고 있다. 화단인지 인도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은 무분별한 가로수 식재로 사람들은 나무를 피해 걸어야 하는 상황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 중심 행정의 또 다른 사례가 바로 ‘가각정비사업’이다. 원활한 차량의 소통을 위해 굴곡지 등의 차선을 확장하는 사업인 가각정비사업은 차량 소통만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다.

사람의 통행이 뜸한 지역을 선정해 인도를 축소하고, 차도를 넓히는 가각정비사업은 일면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업이기도 하지만 인도를 없애면서 앞으로 보행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막는 사업이기도 하다. 운전자들에게는 호평을 받는 사업이지만 ‘뚜벅이’들에게는 아찔한 경험을 주기도 한다. 이 밖에도 자동차 중심의 행정은 일일히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사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걸어다닌다면 과연 이렇게 사업을 추진하겠느냐”는 뚜벅이들의 항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비단 행정에서만 보행자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를 가득 메운 시설물 가운데에는 민간에서 설치한 것도 만만치 않다.

특히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상가들은 보행자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광고물, 전시대 등을 수시로 인도에 꺼내놓고 있다. 현재 법으로도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고는 있지만 차량의 소통을 위해 엄격하게 주차단속을 펼치는 것과 달리 인도 위의 불법행위는 당연한 일로 취급되고 있다.


 보행약자를 지키는 사회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


그럼 인도를 걷는 사람들은 누굴까? 이러한 우문(愚問)을 하게 되는 이유는 보행자 대부분이 차량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반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차량 소유가 힘들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보행을 고집하는 사람을 제쳐두더라도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장애인, 어르신, 청소년 등과 같은 계층은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약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이 인도 위를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뚜벅이’를 위한 사회는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웰빙열풍과 함께 ‘느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걷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을 가지 못하더라도 집 근처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이 또 다른 삶의 척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보행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제기되어온 보행권에 대한 인식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권리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동안 뒤틀려진 보행환경을 바로 잡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자동차 중심의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의 인식이 변하는 것이 첫 걸음이다. “차만 피하면 되는 차도가 낫다”는 뚜벅이들의 말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걷기 좋은 도시 양산’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양산시민신문
ⓒ 양산시민신문
↑↑ 걸을 권리, ‘보행권’을 제약하는 환경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인도를 점령한 가로수, 전신주, 광고물 등 각종 시설물은 우리의 욕심과 닮아 있다. 모든 일은 빨리빨리 진행하려는 욕심에 가로 막혀 보행약자들은 인도를 벗어나 차도 위를 숨죽이며 걷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린 보행현실을 되짚어 보고 약자를 배려하는 ‘느림의 문화’가 사회에 정착되는 일이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다.
ⓒ 양산시민신문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