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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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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줄의 노트] 추어탕

최용희 기자 yonghee32@nate.com 입력 2012/05/22 11:29 수정 2012.05.22 11:30




어머니는 주말마다 추어탕을 끓였다 온몸으로 버둥대는 미꾸라지 위로 굵은 소금 뿌리고 뜨거운 가마솥에 가둔 채 뼈를 고았다 아버지의 속내 다 드러내지 않던 배추, 지난한 날들을 쑥 뽑아 놓은 대파, 그 속에서 녹아나던 미꾸라지의 생, 울컥 밀물지던 가슴 속 찌끼들, 어머니는 가마솥 가득 양념 버무려 국물을 우려내었다 생의 끝 부여잡고 방울방울 밀어 올리는 거품, 솥뚜껑 달그락거렸다 어머닌 모가지가 긴 스텐 주걱으로 끓어 오른 포말을 걷어내곤 하였다


아버지 옷깃에 묻어온 대문 밖의 생활들, 고운 채에도 걸러지지 않던 가시가 입안을 맴돌고 있었다 억지로 삼킨 가시는 가족 깊숙이 파고들어 생채기를 만들며 단단한 뼈가 되었다


가마솥 가득 어머니를 우려 낸 추어탕을 먹은 지 십년, 굽이치며 흘러든 강의 하류, 가슴 속 모래톱처럼 쌓인 생채기 평야를 만들고 나서야 어머니의 부서진 등뼈 사이로 헤엄치고 있는 미꾸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물길 거슬러 올라가 떠나고 싶은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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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넣고 얼근하게 끓인 국으로, 여름철 특히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입니다. 단백질, 칼슘, 비타민 등 영양가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진흙을 파고드는 미꾸라지의 강한 힘이 우리 몸에도 전이 될 거라 믿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보양식이지요.

 
↑↑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그런데 이 시에서 미꾸라지는 그런 ‘보양’의 이미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한스러운 삶을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군요. 시인은 미꾸라지를 어머니와 동일시하여 추어탕을 끓이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온몸으로 버둥대는>, <그 속에서 녹아나던>, <울컥 밀물지던 가슴 속 찌끼들>, <고운 채에도 걸러지지 않던 가시> 등은 <아버지 옷깃에 묻어온 대문 밖의 생활> 때문에 상처 입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추어탕> 속에서 한스럽게 살다 가신 어머니를,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란 자신을 성찰하고 있군요. <푸른 물길 거슬러 올라가 떠나고 싶은>과 같은 대목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바람을 타고 한없이 풍겨오는 비릿한 내음에 가슴 뻑뻑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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