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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가 달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0.5g의 미세한 무게도 잡아내는 감각 때문이다. 그는 대충 모양만 흉내 내서는 절대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목공 칼을 든다고 했다.
평소 웃음 넘치던 그의 표정도 작업대 앞에서는 비장해진다. 100g의 사소한 무게가 선수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에 작업대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완벽한 모양을 잡기 위해 양손으로 단단히 칼을 잡는다. 돌아가는 목재에 칼이 닿자 리본 끈처럼 얇은 톱밥이 날리며 방망이의 모양이 잡혀간다. 손잡이의 모양을 잡기 위해 미세한 힘을 가하니 칼을 따라 한 꺼풀 나무가 벗겨진다. 투박했던 나무가 방망이의 모습을 갖춘다. 기계보다 더 정교한 기술로 깎아낸 방망이를 직접 들어 모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최 씨의 모습에서 달인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29년 전 목공일을 시작한 최 씨는 어깨너머로 선배들의 기술을 익혔다. 3년간 번 돈으로 부산 연산동에 ‘은성큐’라는 작은 공장을 열었다. 최 씨의 공장은 20여년간 당구 큐로 승승장구 해왔다.
그러나 2005년, PC방의 유행으로 당구장이 불황을 겪자 야구 방망이로 영역을 확장했다. 큐와는 달리, 야구 방망이의 작은 차이로 선수의 타격 감각이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된 최 씨는 전보다 섬세하게 나무를 다루기 시작했다.
“홈런이 나야 하는 공에 안타가 나던가, 방망이가 부러진다든가 하는 일이 생기면 선수의 앞날에 지장이 있죠. 그래서 겉만 그럴싸한 방망이가 아닌 내실 있는 방망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먼저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우리나라 목재 건조 기술은 외국처럼 발달하지 못해 질 좋은 나무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목재를 구해 한국에 들여오는 데까지 서너 달을 소요했다. 최 씨는 수입한 목재에 20여년 큐를 깎으며 쌓아온 내공으로 방망이를 깎았다.
처음 완성한 방망이를 들고 당시 최고였던 이종범 선수를 찾아갔다. 최고의 방망이는 최고의 선수가 써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이 선수에게 판매했다. 협찬이 아니라 판매하는 것을 본 다른 선수들은 “사장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며 비웃었다.
방망이를 제값에 판매한 것은 제품의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장인 특유의 원칙 때문이었다. 2006년 그의 방망이는 한국야구위원회의 공인을 받았고, 많은 선수가 최 씨의 방망이를 찾았다.
자부심을 품고 일하는 그도 작업복을 입고 먼지 나는 공장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가끔 처량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도 잘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도 즐겁게 이 일을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큰 욕심은 없고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대로변으로 공장을 옮겨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사무실도 넓혀 선수들의 사인과 그들의 손때가 묻은 큐와 방망이를 전시하는 것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