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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배움의 한, 한글교실서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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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한, 한글교실서 풀었습니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3/03/26 09:25 수정 2013.03.26 01:27




70여년 만에 다시 잡은 책과 연필. 어릴 적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지만 살아가기 바빠 배우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책상 앞에 앉아 서툰 손길로 글을 적어간다. 어르신들이 가지고 살아왔던 배움의 한을 풀어준 곳은 ‘찾아가는 한글학교’. 그곳에서 어르신들은 어릴 적 느끼지 못한 배움의 즐거움을 얻고 있다.   

길 가다 본 한글교실
전단지로 배움 시작한 강영자 씨

강영자(75, 서창동) 씨는 지난해 3월, 거리에서 반가운 전단지 한 장을 만났다. ‘찾아가는 한글교실’의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전단지였다. 강 씨는 그 길로 서창동주민센터를 찾아 신청서를 접수했다.

“남들이 보기에 저는 글을 다 아는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그저 들리는 대로 글을 쓰니 맞춤법도 엉망이고 문법도 제대로 모릅니다. 글을 읽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 해서 글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대로 한글을 깨우치고 싶은 마음에 한글교실에 들어왔지요”

강 씨는 부산에서 한복점을 운영하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왔다. 반듯하지 못한 글씨체지만 손님들의 이름과 옷 치수는 적을 수 있었기에 그의 자식들도 강 씨가 가진 배움의 한을 알지 못했다.

“아들과 딸도 제가 글을 모르는 줄 몰랐답니다. 멀쩡하게 한복점도 잘 운영하고 서투르지만 글도 쓰니 제 속마음까지는 몰랐겠지요”

어린 시절부터 배움에 대한 의지가 컸던 강 씨지만 ‘여자가 어디 학교를 가냐’던 할아버지의 말씀에 학교에 대한 열망을 접어야만 했다. 그 후 한복을 배우고 생계를 이어오며 바쁘게만 살아왔다.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글을 배우려 했지만 그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시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을 알게 됐다.

“양산이 참 고마운 도시지요. 이제라도 글을 배울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제 평생 동안 글을 배우는 지금이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다”

강 씨는 “배운 것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지만 도와주는 선생님 덕분에 스트레스도 안 받고 공부하고 있다”며 “완벽한 글로 내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늘 말하고 다녔던 배움에 대한 열망 
한글교실로 갈증 푼 유인선 씨

유인선(84, 덕계동) 씨는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해방 후 한국으로 왔다. 한국으로 온 후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다. 어른들을 모시고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생활로 인해 글을 배울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 바쁘게만 살아왔다.

“못 배운 탓에 자식들 학교에 가도 나설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앞에 나가서 뭐라도 적게 할까봐서요. 그 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동사무소도 못 갔습니다. 그런 곳에 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되니까요. 그렇게 살아오다 시어른도, 남편도 떠나고 혼자 있으니 시간이 많아져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글교실을 알게 됐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유 씨가 한글교실에 오게 된 것은 딸의 도움이 컸다. 유 씨의 집 근처에 한글교실을 운영한다는 현수막을 본 그의 딸이 ‘글을 배우고 싶다’고 늘 말했던 유 씨를 떠올려 대신 신청해 준 것. 그는 딸 덕에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며 80이 넘은 나이에 공부를 하는 것이 힘들지만 지금이라도 배움의 기회가 온 것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책을 봐도 대충 보고 넘어갔습니다.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책 보는 재미도 몰랐지요. 지금은 책 읽는 시간이 정말 즐겁습니다. 손자의 동화책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이제부터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유 씨는 “죽는 날까지 배움을 이어가는 것이 꿈”이라며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글을 알려주는 선생님과 같이 할 수 있는 한글교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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