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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梁山(양산)’ 정명 600주년 1413년 조선 태종 때..
문화

‘梁山(양산)’ 정명 600주년 1413년 조선 태종 때 지어져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3/04/02 10:01 수정 2013.04.02 10:01
신라 ‘삽량주’, 고려 ‘양주’거쳐 ‘양산’으로



“군(郡)ㆍ현(縣)의 이름 가운데 주(州)자를 띤 것은 모두 산(山)자와 천(川)자로 고쳐라”(‘태종실록’ 권26, 1413년 10월 15일)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은 중앙집권과 왕권 강화를 위해 1413년 대대적인 지방제도 개편을 실시했다. 태종은 군ㆍ현의 지명 중 주자를 쓴 고을의 명칭을 지역 특성에 맞게 산과 천으로 변경했다. 고려시대 ‘양주(梁州)’로 불렸던 우리 지역이 ‘양산(梁山)’으로 바뀐 시기도 이때다. 따라서 올해는 우리 지역에 양산이라는 지명이 사용된 지 600년이 되는 ‘양산 정명(定名) 600주년’이다.

양산에 대한 관련 기록은 고려 인종 23년 편찬된 ‘삼국사기지리지’에 처음 등장한다. 신라 문무왕 5년, 상주(上州)와 하주(下州)의 땅을 분할해 ‘삽량주(歃良州)’를 설치했다고 나온다. ‘삼국유사’에 언급된 삽라군(歃羅郡)이 삽량주의 유래라는 설이 있으며 ‘삽(歃)’자는 ‘맹세를 다짐해 희생의 피를 마시다’라는 뜻이다. 신라와 가야 간의 ‘삽혈의식’(歃血儀式, 왕이나 제후가 언약을 위한 제사를 지낼 때 희생된 동물의 피를 바친 후 그 피를 마시거나 입술에 칠하는 의식)과 관련돼 지명이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신라 경덕왕 16년 전국 행정구역을 새로 정비하며 군ㆍ현의 승격과 강등, 영속관계의 조정 등 행정질서를 개편해 삽량주는 양주(良州)가 됐으며 고려 태조 23년에 양주가 ‘良州’에서 ‘梁州’로 바꼈다.

그 후 조선 태종이 양주를 양산으로 수정, 우리 지역의 명칭이 ‘삽량주→양주→양산’으로 변경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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