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에 대해 누군가는 ‘문화의 불모지’라고 말한다. 양산은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을만한 시설도, 지역 고유의 문화를 키우고 이어가려는 노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문화의 불모지에서 ‘명인’이 탄생했다.
양산의 전통인 양산사찰학춤을 비롯해 우리 춤 전승에 앞장서온 춤꾼 학산(鶴山) 김덕명(91, 사진 오른쪽) 선생과 그의 제자 원혜정(42, 사진 왼쪽) 씨가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예총)가 인증한 ‘명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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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총의 명인인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역사ㆍ문화 가치를 지닌 활동을 하거나 창작, 제조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예술 문화를 발굴, 계승하면서 수준 높은 유ㆍ무형의 성과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김덕명 선생은 의식무용인 ‘성주풀이’에서, 원혜정 씨는 전통무용인 ‘연등바라춤’에서 각각 명인에 올랐다.
김 선생은 “심사를 통해 전국의 춤꾼들 중에 단 3명만이 명인으로 선정됐고 그중에 2명이 우리 지역에서 나왔다”며 “이는 전국에 양산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며 우리 문화를 더 가꿔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양산사찰학춤의 대가 김덕명 선생
성주풀이 유일 보유자로 명인 올라
양산사찰학춤의 보급과 연등바라춤, 한량춤, 장검무 등 한평생 고전 춤 발굴과 후학 양성에 힘쓴 김 선생은 의식무용인 ‘성주풀이’의 명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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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는 우리나라 전통 무속신앙에서 집을 지키는 신을 뜻한다. 성주풀이는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한 뒤 집의 수호신으로 성주를 모시는 굿을 할 때 부르는 무가이다. 집안의 번영을 빌기 위해 불리던 이 노래는 사대부, 포수, 각설이 등 적어도 1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
“각 역할에 맞는 가사가 있고 춤이 있기 때문에 한 번 공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양산에서 공연한 것만 5번 정도 됩니다. 시청, 상공회의소, 경찰서 등 우리 지역에서 큰 건물이 개청할 때 그곳에서 공연했죠”
김 선생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성주풀이 경연대회가 있어 많은 사람이 이 전통을 접하고 배울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성주풀이를 하던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자 성주풀이의 모든 구성과 가락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어졌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가 성주풀이를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인정받았기에 명인으로 선정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이것을 계승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저에게 좋은 제자가 있어서 앞으로 제가 아는 모든 춤과 노래를 혜정이에게 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 여러 번 되풀이해 춤추기는 쉽지 않다고 말하는 김 선생은 제자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전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도사 연등바라춤 명인 원혜정 씨
학생에게 지역 전통 전파하고 싶어
선생의 제자로 호걸양반춤, 한량무, 연등바라춤 등을 사사하던 원 씨는 선생의 추천으로 명인 시험에 참여하게 됐다. 그중 원 씨가 명인으로 인정받은 연등바라춤은 고려 전통 불교 예술 중 하나로 부처의 신행, 공덕, 정진, 수행을 찬미하며 제를 올릴 때 동발을 손에 들고 다라니 장엄염불을 외우면서 추는 불교 의식무 중 하나다.
특히 원 씨의 연등바라춤은 통도사에서 대대로 계승돼 온 것으로 춤 동작과 소리에서 범패작법에 나오는 바라춤과는 조금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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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밑에 있으면서 역사 가치와 유래까지 함께 알아가니 춤 한 동작 한 동작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죠. 더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배우고 있고, 선생님의 이름과 명인이라는 호칭에 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산 출신인 원 씨는 무용을 배우던 시절 우연히 본 선생의 양산사찰학춤 공연에 반해 전통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결혼하며 웅상으로 와 양산시민이 되고 나서 ‘양산사람이면 양산학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무작정 문화원으로 찾아갔다. 원 씨의 적극적인 열정이 선생과 그를 이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배우고 싶은 열정으로 선생님을 찾았고 선생님 역시 진심으로 저를 지도해주셔서 이런 영광까지 누리게 됐어요. 명인 인증을 받으니 연등바라춤 전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인천에는 바라춤 전수 학교가 있어요. 양산에도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이런 제도가 생긴다면 자라는 아이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고 그 속에서 계승을 꿈꾸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지역 문화를 계승하는 문화재
배출할 수 있는 제도 있었으면
김 선생은 “지역을 대표하는 춤이 있음에도 배우려는 사람도 적고, 제대로 사사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춰지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지역의 문화예술이 시민의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친근한 문화로 자리매김할 기회가 부족해 관심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문화원이나 문화체육센터 등에서 강좌를 만들어 춤을 알리고 있지만, 전문 춤꾼을 키워내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원 씨는 “선생님 한 분에 의해 여러 춤이 전승됐지만, 양산을 대표하는 이 춤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시에서 제도적인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며 “더불어 시민들도 우리 춤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