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에 있는 양산여자고등학교(교장 이상선) 담벼락을 보면 삭막한 회색 대신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해 8월, 양산여고 학생들이 힘을 모아 30m에 이르는 벽을 정성으로 채운 것이다.
더운 여름날, 담장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말도 없이 맡은 그림에 정성을 다하며 완성한 그림. 이 날을 시작으로 양산여고 벽화동아리가 본격 활동을 하게 됐다.
지난 19일 저녁, 초반부터 벽화동아리 활동을 해 온 세 친구를 만났다. 자신의 키보다 높고 넓은 벽을 채우려면 완전히 몰입해서 작업해야 하므로 체력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조금 거칠 것이라는 기자의 편견은 이들의 모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세 친구였지만, 자신의 활동에 대해선 자부심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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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그림과 다른 벽화만의 매력
벽화동아리 회장 김다영(양산여고2) 학생은 당시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벽화를 그리게 됐다. 원래 미술을 배우고 있었지만, 자신이 하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벽화의 세계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다영 학생은 “작은 도화지가 아닌 커다란 벽면에 그림을 그리고 삭막한 벽을 바꾸는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처음엔 ‘이번 한 번만 하자’고 생각했지만, 나와 친구들이 함께 그려낸 결과물을 봤을 때의 뿌듯함을 잊지 못해 계속 벽화를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동 벽화 그리기부터 양산초등학교 벽화활동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그때는 교내 정식 동아리가 아니라 학교의 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들을 도와주던 이헌수 교사와 이대현 교사, 벽화동아리에 페인트, 붓 등을 지원해준 자원봉사자 김민구 씨 등의 도움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신예정(양산여고3) 학생은 그래서 정식 동아리가 된 지금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예정 학생은 “학교의 지원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활동에 뜻이 있는 친구들을 더 많이 모아 함께 할 수 있어 좋다”며 “그동안은 10명도 안 되는 친구들끼리 활동하느라 솔직히 힘이 들었다”고 웃었다.
이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부산 경찰서 유치장의 벽에 그림을 그렸던 때를 꼽았다. 처음 가본 경찰서 유치장에서 벽화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홍연수(양산여고2) 학생은 “경찰서란 이름만으로 조금 겁을 먹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유치장 안에 사람도 있었다”며 “거기 있었던 분이 인상이 조금 험악해서 무서웠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니 벽화 그리기에 빠져서 나중엔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4월 본격 활동을 하기 전, 동아리 활동을 함께할 친구들을 모집했다. 그림 실력보다는 그림을 좋아하고, 여러 사람과함께 공동 작업이 가능한 원만한 인성을 가진 친구를 선발한 것이다. 벽화활동은 주로 방학과 주말에 이뤄지며, 온종일 작업하기 때문에 활동에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는 회원을 뽑기 위해 면접까지 진행했다.
이들은 “올해는 교동마을과 회현마을 전체에 벽화를 그리게 되는 만큼 활동에 대한 친구들의 기대가 크다”며 “역사를 담은 그림을 그려 교동을 찾는 사람들이 우리 그림으로 행복함을 느끼고, 통영의 동피랑 마을처럼 유명한 벽화 마을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