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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원동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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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4/04/01 09:57 수정 2014.04.01 09:56
수채화로 자연의 맑음을 전하는 조순선 화가




흔히 ‘서양화의 스케치는 밑그림, 수채화는 습작, 유화는 완성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채화야 말로 서양화의 기름기를 뺀, 담백한 미학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감의 번짐을 통해 맑고 투명함을 전하는 작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수채화만을 고집하는 작가. 20년째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 조순선(58) 화가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미협과 부산미협에서 활동하던 조 작가는 원동의 아름다움에 반해 10년 전 늘밭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 내내 날을 흐리게 만들었던 비구름이 지나가고 햇살이 드리운 지난달 21일, 이날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를 작업실에서 만났다.


자연을 닮은 그, 그리고 그림
 

작가와 작업실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작가의 모습이 동전의 앞면이라면 작업실은 작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전의 뒷면이다. 그래서 작업실에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취향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늘밭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그가 그려내는 작품처럼 자연이 녹아들어 있다. 작업실 창밖으로 늘밭마을의 고요하면서도 맑은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그곳에서 매일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옮겨 담는다. 그림은 실제를 보고 그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꼭 실물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업실 창문 너머에 보이는 화단엔 제가 좋아하는 꽃으로 가득하죠. 비가 오는 날은 창밖의 비에 젖은 꽃들을, 눈이 온 날엔 그 풍경을 그릴 수 있죠. 이젠 제 삶이 자연이 된 것 같아요”

이런 소신으로 그는 20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화폭에 옮겼다. 35번 국도 근처 갈대 풍경을 담은 작품 ‘강원도 가는 길’을 완성하기 위해 큰 캔버스를 들고 세 번이나 같은 장소를 찾아 갔다. 순천의 갈대밭을 그리기 위해 무작정 떠나기도 했고 자연에서 그림을 그리다 뱀과 마주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수채화로 전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던 그는 10년 전, 암 수술 후 건강을 다스리기 위해 늘밭마을을 찾았다. 고즈녁한 마을 풍경은 자신이 꿈에 그리던 살고 싶은 곳이었다. 그곳에 마음과 몸을 내려놓았다. 


투병 중에도 놓을 수 없던 ‘붓’


늘밭마을, 몸이 아픈 사람들이 건강을 다스리던 ‘자연생활의 집’에서 머물던 때, 시끄러운 도심과 달리 고요한 원동은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투병 중이었지만, 좋은 환경에 있으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니까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남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무작정 그림도구를 챙겨와 아랫집에 맡겨 놓았다. 그리고 시나브로 아랫집으로 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도구를 맡겨놨던 집은 집주인이 돌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말 그대로 자연을 옮겨놓은 집이었다. 그는 넓은 마당에 가득했던 나무와 꽃, 자연석이 주는 편안함에 반했다. 그 집을 사 들여 자신의 작업실로 꾸몄다.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건강도 회복했다.

“남편에게 이혼당할 뻔도 했어요. 아픈 몸으로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싫어했거든요. 그래도 붓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림 도구를 맡겨 놓은 집 주인이 좋은 분이라서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그게 인연이 돼 이 집에서 제가 머물 수 있게 됐고요”

그는 그렇게 양산시민이 됐다. 


50세에 찾은 작가로서의 당당함


그의 집에 가면 늘밭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과 흐드러진 꽃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이 풍경과 꽃을 그대로 화폭에 옮겼다. 별채는 그림을 전시한 갤러리로 만들었다.  

보여줄 것이 있다며 기자를 끌고 간 갤러리에는 한 여인이 다소곳이 꽃을 보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50세가 되던 해 그린 자화상이다.

“50세 이전의 저는 세상에 주눅 들어 있었어요. 저보다 사회에서 잘나가는 남매들에게, 노력파인 저와 반대로 천재적인 감각을 선보이는 다른 화가들에게 주눅이 들었죠. 하지만 딱 50세가 되니 마음이 달라지더라고요.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그런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어요.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었던 거죠”

또 하나의 그림을 소개했다. 연꽃이 피는 순간부터 지는 때까지를 그려놓은 ‘연꽃 만나고 간 바람처럼’이다. 길에서 우연히 ‘연꽃 만나고 간 바람처럼’이라는 현수막 문구를 봤다. 스치듯이 본 서정주 시인의 시 제목인 그 문구가 잊혀지지 않아 하루 동안 피고 지는 연꽃의 변화를 우리 인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음악, 이야기가 있는 전시회 열고파 


그는 쭉 양산에서 살 것이라고 한다. 양산에서 양산을 담은 그림으로 개인전도 열고 싶다. 다만, 그동안 부산에서 활동한지라 양산 예술계와 어떻게 함께할 지 고민하고 있다.

“원동역에서 전시를 하려고 양산시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검증도 안 된 작가’라고 하더군요. 20년 넘게 그림을 그렸고 미협 회원인데도 말이죠…. 그 일을 겪으며 양산이 문화적으로 닫힌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양산의 자연을 그리며 양산 사람들과 소통하고 동행하는 예술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여섯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갤러리가 아닌 작업실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이 흐르고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가 있는 전시회. 그는 “제 그림의 기반인 늘밭마을에서 자연과 예술을 아끼는 사람들과 마을 주민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늘 자연과 함께하는 삶, 그 자연을 그리는 화가, 이윽고 자신도 자연이 된 화가. 그의 손에서 새롭게 부활하는 양산의 꽃과 나무와 길과 풍광들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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